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빈체로(젠스 거버, 게르트 모데스) 제공
인정 못받던 걸작 ‘마태수난곡’
멘델스존이 지휘해 진가 밝혀
바흐가 이끌던 성토마스 합창단
멘델스존이 지휘한 게반트하우스
3월16일 예술의전당서 내한 공연
멘델스존이 지휘해 진가 밝혀
바흐가 이끌던 성토마스 합창단
멘델스존이 지휘한 게반트하우스
3월16일 예술의전당서 내한 공연
녹음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 음악은 철저히 연주 순간에만 존재하는 시간예술이었다. 작곡가가 살아있을 때는 하나의 작품이 수 차례 재연되기도 하지만, 작곡가가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연주되지 않고 청중의 뇌리에서 잊히는 경우가 많았다. 악보는 분실되거나 어딘가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쓰곤 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 합창단이 오는 3월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바흐의 <마태수난곡>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이 곡은 서양음악의 바탕인 교회음악 최고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다. 바흐가 성토마스교회 합창단의 칸토르(합창대장·음악감독)로 재직할 때 작곡·초연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작품은 바흐 생전에도 라이프치히 이외의 도시에서는 연주되지 않았다. 바흐 사후에는 연주가 뜸해지다가 점점 잊혀 갔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반해야 하고 연주 시간만 장장 3시간에 달하는 대곡이기 때문에, 널리 연주되기가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1829년 20살의 멘델스존은 <마태수난곡>의 진가를 알아봤다. 이 곡의 가치를 재조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지휘해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다. 대중적 성공은 물론이고 연주자들과 학자들에게도 바흐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이는 바흐 작품 연주 및 연구 활성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멘델스존이 아니었으면, <마태수난곡>이 현재와 같은 생명력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 합창단은 2004년 이후 4년마다 내한했다. 매번 변함없이 <마태수난곡>을 연주했다. 이들 연주단체와 작품의 조합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유성이 존재한다. 성토마스 합창단은 바흐가 27년간 이끌며 <마태수난곡>을 포함해 칸타타, 모테트 등 수많은 교회음악들을 초연했던 단체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마태수난곡>을 부활시킨 멘델스존이 죽기 전까지 12년간 조련했던 악단이다. 어느 솜씨 좋은 연주단체도 <마태수난곡>의 창작 의도에 이들보다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훈련을 통해 애써 만들어낸 것이 아닌, 오랜 전통으로서 체화한 해석과 표현은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멘델스존은 <마태수난곡>뿐 아니라 바흐의 여러 작품들을 발굴해 소개했다. 또한 영국 런던에서 찾아낸 원전 악보를 바탕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을 재연했고, 슈베르트의 사후에 잠자고 있던 교향곡 9번 ‘그레이트’를 무대에 올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의 명곡이 현대에까지 전해지고 사랑받기까지는, 이렇듯 창작자 못지않게 발굴·연구·해석해 다시 무대에 올린 이들의 역할이 컸다. 오늘날 ‘첼로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역시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가 13살 때 헌책방에서 악보 편집본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졌고, 결국 음반으로 녹음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성토마스합창단. 빈체로(젠스 거버, 게르트 모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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