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시골 시트콤’에서 ‘식탁 치정극’까지 무한변주

등록 2016-02-01 20:51수정 2016-02-01 21:00

이윤택의 ‘바냐아저씨’. 사진 중견연극인 창작집단 제공
이윤택의 ‘바냐아저씨’. 사진 중견연극인 창작집단 제공
리뷰 l 연극 ‘바냐아저씨’ 두 편


연극 <바냐아저씨> 두 편이 서울 대학로 무대에 나란히 올려졌다. ‘거장’ 이윤택이 중견연극인 창작집단과 함께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 연출가 쓰카구치 도모가 연출했다.

이윤택의 ‘바냐아저씨’

한국적 체호프 지향…희극성 더해
기주봉 등 중견배우들 보는 맛도

쓰카구치 도모 ‘바냐아저씨’

등장인물들 현대의 식탁으로 소환
이들 입 통해 서로의 관계 까발려

작품은 <벚꽃동산>, <세 자매>, <갈매기>와 함께 안톤 체호프(1860~1904)의 ‘4대 장막’으로 불린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속살을 세밀화로 그려내, 4대 장막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는 평가다. 셰익스피어가 삶과 죽음을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면, 체호프는 일상과 내면을 현대적인 필치로 담담하게 그렸다. 체호프 연극의 인물들은 모두가 주인공인 것처럼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바냐아저씨>의 줄기를 훑어보자. 시골소녀 ‘소냐’와 그의 외삼촌 ‘바냐’는 농사를 지으며 시골 영지에서 산다. 그런데 소냐의 아버지인 교수와 새엄마 ‘옐레나’가 그곳에 눌러앉으려 내려온다. 바냐의 친구인 의사도 그곳에 자주 들른다. 어느 날 교수가 영지를 팔겠다고 선언한다. 25년간 뼈빠지게 일한 영지에서 쫓겨나게 된 바냐는 ‘꼭지’가 돌아버린다. 갈등은 영지 매각을 둘러싼 바냐와 교수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하고, 미모의 옐레나를 둘러싼 바냐와 의사의 대립이 겹쳐진다.

쓰카구치 도모 ‘바냐아저씨’ .  사진 토모즈 팩토리 제공
쓰카구치 도모 ‘바냐아저씨’ . 사진 토모즈 팩토리 제공
체호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바냐아저씨>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먼저 이윤택의 <바냐아저씨>(2월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왼쪽 사진)는 ‘시골 시트콤’이다. 이미 지난해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올려 호평을 얻었던 대본이다. 이윤택은 ‘한국적 체호프’를 지향한다. ‘생각이 많고 복잡한’ 러시아인의 사고가 아니라 ‘음주가무를 즐기는 감성적인’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춘다. 거기에다 체호프가 강조한 삶의 희극성을 더해 ‘시골 시트콤’으로 체호프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와 달리, 쓰카구치 도모의 <바냐아저씨>(2월7일까지 아름다운극장·오른쪽)는 ‘식탁 정치극’ 또는 ‘식탁 치정극’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온 그는 등장인물들을 현대의 식탁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이들의 입을 통해 서로의 정치적 관계 또는 치정적 관계를 까발린다. 현실을 얘기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교수, 숲을 가꾸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의사, 힘겨운 노동 속에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바냐, 그리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속물의 정치’, 곧 치정이다.

이윤택의 <바냐아저씨>에는 기주봉(바냐), 김지숙(옐레나) 등 내로라하는 중견배우들이 출연한다. 이들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좀더 바란다면, 궁핍과 소외의 세월을 견뎌온 이 배우들이 이제 엄숙함보다는 ‘시골 시트콤’의 콘셉트에 걸맞게 좀더 발랄해졌으면 한다. 빵빵 웃음이 터질 때 객석과 무대가 모두 행복한 ‘한국적이고 희극적인 체호프’가 구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쓰카구치 도모의 <바냐아저씨>에선 배우들이 식탁에 꽁꽁 묶여 있다. 식탁은 소비 자본주의의 탐욕을 드러내는 장치이지만, 자칫 다양한 표현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이번 무대의 미덕은 되레 식탁 밖에 웅크리고 있다. 바로 지치고 상처 입은 바냐(송철호)의 퀭한 눈이다. 후기 산업사회의 팍팍한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눈이고, 신도림역과 광화문광장에서 어깨를 스친 갑근세 납부자의 눈이기도 하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