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이 21세기에 생존한다면 내 연주를 듣고 만족할까, 아닐까를 늘 생각한다.”
쇼팽 국제 피아노콩쿠르의 첫 한국인 우승자 조성진(22)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17회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시작 전 상영된 인터뷰 화면에서였다.
조성진은 낮(오후 2시)과 저녁(오후 8시) 두 차례 공연에서, 귀가 얼얼할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을 받으며 청중 앞에 섰다. 이내 집요한 사유와 혹독한 수련의 산물을 무대 위에 펼쳐냈다. 연주 순서는 두 공연 모두 맨 마지막이었다. 첫번째 공연에서는 콩쿠르 예선 연주곡이었던 쇼팽 ‘녹턴 13번’과 본선 연주곡 ‘환상곡 바단조’, 폴로네즈 6번 ‘영웅’을, 두 번째 무대에서는 결선 연주곡이었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줬다. 지난해 10월 콩쿠르 당시의 열띤 감흥이 한국 청중 앞에서 압축적으로 재현됐다.
쇼팽의 작품들은 성격에 따라 곧잘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내성적이며 우수 어린 작품들, 나머지는 반대로 장엄하고 영웅적인 면모가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낮 공연에서 조성진이 연주한 세 곡은 후자에 가까웠으며, 모두 쇼팽의 창작력이 정점에 달했던 1841~1842년에 탄생한 걸작이었다. ‘녹턴 13번’은 녹턴 작품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진지한 곡으로 평가 받아왔으며, ‘환상곡 바단조’는 농익은 반음계 화성과 현란한 전개가 주는 장쾌함이 매력이다. ‘폴로네즈 6번’은 넘치는 기백과 불꽃 튀는 비르투오시타로 ‘영웅’이라는 부제답게 당당함을 과시한다. 조성진은 콩쿠르 본선에서 환상곡과 폴로네즈의 걸출한 연주로 화제를 모았다.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조성진은 쇼팽의 작곡 의도를 예민하게 좇으려는 듯 보였다. 쇼팽이 기존의 화성학에 얽매이지 않고 손가락의 본능적 움직임과 소리를 좇아 고유한 반음계적 화성 진행을 발전시켰듯, 조성진 역시 모범 답안처럼 여겨져 온 해석들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음색을 빚어냈다. 반복적인 악구가 등장할 때마다 생경한 아이디어로 음색의 대비를 이끌어냈는데, 무방비로 설득 당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접했던 콩쿠르 및 바르샤바 우승자 갈라 콘서트 연주와 같은 레퍼토리였지만 악상 표현이나 타건, 페달링 등 연주상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았다.
저녁 공연에서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도 그는 놀랍게도 콩쿠르 때와 사뭇 다르게 연주했다. 전반적으로 속도를 바짝 당기고, 2악장에 즉흥성을 더해 루바토의 폭을 넓혔다. 속도가 빨라지자 3악장의 크라코비아크 무곡 리듬은 약화됐지만, 오른손 진행이 눈부시게 음을 흩뿌렸다. 전반적으로 음색 대비가 강화됐고, 다성부적인 진행이 살아났다.
이날 함께 무대에 오른 다른 수상자들의 연주도 오래 기억할 만한 호연이었다. 2위 샤를 리샤르 아믈랭은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피아노 소나타 3번 나단조’에서 놀라운 장악력과 세련된 프레이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3위 케이트 리우는 꾸밈 없는 자연스러움, 4위 에릭 루는 시적인 서정, 5위 이케 토니 양은 투명한 음색, 6위 드미트리 시쉬킨은 영민한 표현력이 돋보였다.
김소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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