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극장나무협동조합 제공
싹트는 연극협동조합
9개 극단 모인 ‘극장나무협동조합’
지역네트워크 `‘대한민국소극장열전’
“안정적 공연환경, 작품생산의 동력”
9개 극단 모인 ‘극장나무협동조합’
지역네트워크 `‘대한민국소극장열전’
“안정적 공연환경, 작품생산의 동력”
무대에선 말들이 속사포처럼 터졌다. 객석에선 웃음이 팝콘처럼 터졌다. 바람난 부부를 둘러싼 ‘거짓말의 향연’이다. 하지만 무대엔 아무런 장치나 소품이 없다. 낭독극이다. 시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객석은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 오직 배우의 말, 몸짓, 표정에 몰입함으로써 오히려 연극적 재미는 증폭됐다. 120석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관객과 배우의 내밀한 소통이다.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아트홀 마리카 3관에서 열린 ‘극단 행’의 <누가누구?>(오른쪽 사진) 공연 장면이다. 극장나무협동조합이 주최하는 ‘제2회 극장나무 쿱(coop) 페스티벌 낭독공연’ 중 하나다. 18개 극단이 오는 28일까지 릴레이로 진행하는 ‘협동조합 축제’다. 낭독공연은 극장나무협동조합이 ‘소규모 극단들에 무료로 낭독극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창립 때부터 지속해온 행사다. 그 중 뽑힌 두 작품은 정식 공연으로 이어진다.
극장나무협동조합은 2014년 7월 씨어터오·제자백가·경험과상상·락버스·새녘·노래극단 희망새 등 대학로 6개 극단이 결성했다. 지금은 진동, 행, 혜동바위 등 3개 극단이 더 참여해 모두 9개 극단, 100여 명 조합원으로 성장했다. ‘극장나무’는 나무를 키우듯 연극을 키우자는 뜻이다. 지금까지 연극계엔 개인이 모인 소비자형 협동조합이 있었다. 대전과 서울의 소규모 배우협동조합, 연극인 부모 협동조합 등이다. ‘극장나무’는 그들과 달리 사업자 등록을 한 소규모 극단이 모였다. 공동극장 운영과 공연제작 상호지원 시스템을 갖춘 일종의 소상공인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다들 찌질했다. 섣불리 공연을 하겠다고 나서질 못했다. 제작비도 없었고, 국공립 지원사업에 신청해봐야 떨어질 게 뻔했고. 설령 올리더라도 1주일을 넘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설립을 주도했던 김민섭 극단 씨어터오 대표의 말이다.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작은 극단들이 모여 극장을 공동운영하면서 비용을 줄였다. 관극 회원을 모집해 안정적인 공연환경도 만들었다. 조명, 무대, 음악 등 전문가들이 서로 돕고 배우를 소개하는 품앗이가 이뤄졌다. 극장을 상시 운영하면서 작품을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동력도 생겼다. 알음알음의 친소관계에 의한 지원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상호지원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극단들도 훌쩍 성장했다. 극단 ‘경험과상상’은 얼마 전 대형 뮤지컬 <화순>을 만들 정도로 협동조합을 통해 발전했다.
이훈경 극장나무협동조합 조합장(극단 제자백가 대표)은 “협동조합의 힘으로 교육사업, 제작비지원을 받는 등 탄력이 붙었다. 조합원 극단끼리 협업과 공동제작은 물론,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경쟁구도까지 생겨났다”고 평가했다.
연극협동조합은 척박한 연극계의 토양 위에 비치는 한 줌 햇살이다. 작은 극단끼리 뭉쳐 공동극장 운영, 공동제작 시스템 구축이라는 효과도 입증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동지적 연대’로 뭉쳐진 이들의 정신적 충족감이다. 협동조합은 연극인들에게 ‘서로 기대고 싶은 어깨’다.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는 대학로뿐 아니라 지역에도 있다. 바로 2011년 결성한 ‘협동조합 대한민국소극장열전’(대소열)이다. 대소열은 대구, 부산, 광주, 구미, 전주, 춘천, 안산, 대전 등 8개 지역 극단이 모였다. 해마다 8개 도시를 돌며 공연을 펼친다. 올해 5회를 맞는 대소열 순회공연은 오는 6~7월에 열릴 예정이다.
‘협동조합 대소열’은 최초 가입비가 300만원이고, 공연 수익금을 극단마다 한해 300만원씩 기금으로 적립한다. 정철원 조합장의 목표는 크다. “전국 30개의 소극장 네트워크를 만들 생각이다. 목표는 세가지다. 첫째, 적립된 기금으로 대학로에 극장을 마련하고, 둘째, 공연 콘텐츠 네트워크를 만들고, 셋째, 지역에서 젊은 연극인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대학로와 지역 양쪽에서 연극협동조합이 힘차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바람은 미미하다. 협동조합의 정신은 ‘서로 돕는 것’이다. 극장나무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극단이 있으면 언제든 돕겠다”고 밝혔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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