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신촌으로 간 대학로 실험정신

등록 2016-02-23 18:59

대학로의 실험정신이 신촌으로 갔다.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윤혜숙 연출의 <오레스테이아>는 여배우 3명만으로 복잡한 그리스 고전을 표현해내는 형식적 실험에 성공했다. 황선택 연출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은 남녀의 성 역할을 뒤바꿔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젊은 대학로 연극인들에게 멍석을 깔아준 산울림소극장의 덕택이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대학로의 실험정신이 신촌으로 갔다.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윤혜숙 연출의 <오레스테이아>는 여배우 3명만으로 복잡한 그리스 고전을 표현해내는 형식적 실험에 성공했다. 황선택 연출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은 남녀의 성 역할을 뒤바꿔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젊은 대학로 연극인들에게 멍석을 깔아준 산울림소극장의 덕택이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극단 달나라 동백꽃 ‘오레스테이아’

최소의 무대서 오차없는 짜맞춤
강말금·이지혜·박주영 3인 10역
윤혜숙의 실용·실험적인 연출
원작 처음과 끝을 뒤바꿈으로써
복수 과정 곱씹어보도록 만들어
왕관을 쓰면 왕이 됐고, 겉옷을 걸치면 왕의 아들이 됐다. 눈을 치켜뜨면 왕비가 됐고, 허리를 굽히면 유모가 됐다. 한 명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번갈아 했다. 일인다역이 가능했던 것은 강말금, 이지혜, 박주영 배우의 힘. 그리스 고전의 원작에서 10명 이상이 해야 할 역을 세 명이 부족함 없이 해냈다. 연기는 한 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이건 톱니바퀴의 설계자, 윤혜숙 연출의 힘. 배우 세 명과 집 하나만 있는 최소의 무대로 최대의 연극 효과를 냈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오레스테이아>가 오는 28일까지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리스 고전을 재해석한 연극 4편을 올리는 ‘2016 산울림고전극장’의 세번째 작품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그리스 비극 3부작인 이 작품은 ‘오레스테스 이야기’라는 뜻으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됐다.

“딸을 죽인 남편을 죽인 아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인 아들!” 복잡한 이야기지만 주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고전을 무대에 올릴 때 재해석과 새로운 형식이 요구된다. 각색 작업을 함께한 윤 연출은 먼저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다.

우선 여배우 세 명만 출연시킨 점. 10명 이상의 캐릭터를 세 명이 연기하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배역을 소화한다. 이지혜 배우의 경우, 처음엔 아가멤논 왕으로 나와 살해당하는 연기를 했다가 다시 아가멤논의 아들로 나와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에 나선다. 한 배우가 여러 배역을 하다 보면, 한 배우 안에 여러 캐릭터가 중첩되기 마련이다. 한 인물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형식이다.

또 주목할 것은 원작의 순서를 뒤바꾼 점. 원작에서 맨 앞에 나오는 ‘아가멤논이 딸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맨 뒤에 배치했다. 복수의 비극이 시작됐던 시점에 초점을 맞춘 것. 관객에게 복수의 연속극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됐는지 곱씹어보도록 한다. 왜 아버지는 딸을 죽였는지, 아내는 왜 남편을 죽였는지, 아들은 왜 엄마를 죽이게 된 것인지.

결말 부분, 의자에 앉은 아가멤논은 마치 법정에 선 피고처럼 보인다. 아가멤논의 아내는 검사처럼 아가멤논의 죄를 캐묻는다. 아가멤논의 딸은 왜 자신을 죽여 신의 제물로 바쳤는지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가멤논을 역사의 법정에 세워 그의 공과를 묻도록 함으로써, 이 복수극의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게 한 것이다.

윤 연출은 “그리스 비극에서 가장 격한 감정을 토해내는 파토스(pathos) 장면이다. 각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수를 한다고 해서 저주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계속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오레스테이아>에 앞서 산울림소극장에 오른 황이선 연출의 <프로메테우스>와 황선택 연출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도 호평을 받았다. 극단 해적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여성들이 ‘섹스 파업’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남녀의 역할을 뒤바꾸는 등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호평에 힘입어 다음달 2~20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다시 공연한다.

이런 실험정신 뒤엔 산울림소극장이 있다. 대학로 젊은 극단들의 도발적인 연극에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산울림소극장은 그리스 고전이라는 주제만 정한 뒤, 나머지는 극단들한테 자유롭게 맡겼다. 올해 산울림고전극장의 마지막 작품은 창작집단 라스의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이기쁨 연출)로 다음달 2~13일 공연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