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류 시절 인민배우 최승희의 부채춤 모습을 그린 대작 ‘무용가 최승희’(1954).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빈 원고지에 오른손을 얹고서 매처럼 전방을 쏘아보는 중년의 사나이가 액자 안에 웅크려있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다. 그의 뒤쪽 서가는 어두컴컴하다. 밝게 드러나는 건 형형한 얼굴과 펜이 놓인 백색의 원고뿐이다. 음울한 기운이 작가를 휩싸고 돌지만, 얼굴과 자태에는 시대 앞에 솔직하고 냉철했던 거장의 자존감이 배어 나온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냉전기 옛 소련 화단에서 활약한 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이 1947년 그린 파스테르나크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이 그림 주위로는 소설가 이기영·한설야, 전설의 무희 최승희의 부채춤 등을 그린 월북예술가들의 인물화들도 내걸렸다. 북한에서 새롭게 창작을 시작한 월북 문화예술인들의 내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 시절 그림들을 대면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여기에 덧붙여 53년 휴전협정 당시의 포로교환 풍경과 53~54년 당시 폐허가 된 북한 곳곳의 사람 사는 모습들까지 누른 태양빛 가득한 인상파적 기록화에 담겨 재현했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3일 막을 올리는 변월룡 회고전은 러시아 디아스포라(이산) 동포작가의 독특한 그림여정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들은 일본을 통해 서양 인상파 그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한국 (남한)화단의 전통과 전혀 다른 경로를 딛고 성장했다.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정통으로 익히며 소련의 국가예술가로 살았던 변월룡은 평생 유화와 동판화 등 서양기법으로만 작업했지만, 인물화, 풍경화 속에는 사물 혹은 사람의 기운을 옮겨낸다는 전통 회화의 ‘전신사조’ 정신이 살아숨쉬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에는 유화, 동판 등으로 묘사한 그의 초상화와 풍경화, 드로잉 200여점과 아카이브 70여점이 나왔다.
작가는 연해주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미술학교인 레핀아카데미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이 학교 교수로 일생을 보냈지만, 시대 상황 탓에 모국땅에서는 환대 받지 못했다. 그는 53~54년 1년 3개월간 소련 문화성의 지시로 북한 평양미술대학 교원이 되어 리얼리즘 그림을 교수와 작가들에게 가르쳤다. 러시아 예술아카데미 시스템을 뼈대로 만든 교과과정은 이후 북한 전후 미술의 밑바탕이 됐다. 건강상의 이유로 소련으로 돌아온 뒤 재방북하려던 그는 56년 김일성이 소련파 정객들을 숙청하면서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재입국이 평생 불허된다. 그는 60년대 이후로 고향인 연해주를 수시로 찾으며 구부러진 소나무, 바람이 휭휭거리는 이땅 특유의 풍경 모티브를 화폭에 담아냈다. 한편으로는 서구여행을 통해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기운을 흡수하고 통제된 사회주의 형식 속에서도 색채와 구도 등에서 미묘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 전시는 작가의 삶과 화풍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연대기 형식 대신 변월룡이 선호한 초상화, 풍경화, 판화 등을 네가지의 소주제 영역에 맞춰 배치하는 얼개를 취했다. 첫 부분인 ‘레닌그라드 파노라마’는 러시아 아카데미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그의 드로잉, 초상, 풍경 작품을 살펴본다. 이어지는 ‘영혼을 담은 초상’은 러시아 리얼리즘의 흐름을 이어받은 변월룡 초상화의 특장을 부각시키며 ‘평양기행’은 북한에 파견된 기간 그린 평양, 금강산 등지의 풍경화와 인물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말미의 ‘디아스포라의 풍경’에서는 말년 유럽 여행의 습작과 연해주 기행의 결과물로서 고향,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소나무’, ‘바람’ 연작, 타계 직전 그린 몽환적인 금강산 대작 등을 보여준다. 특히 변월룡이 오랫동안 수련하며 애정을 쏟았던 동판화(에칭) 작품들은 렘브란트, 고야의 걸작에 필적할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다. 연해주, 북한의 산야와 러시아, 조선의 인물들을 정밀하게 묘사한 이 동판화들은 명암과 선 등의 세부기법이 뛰어나고 화폭도 일반적인 동판화보다 훨씬 큰 수작들이 많다. 5월8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