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선 젊은 극단들의 ‘춘투’가 한창이다.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하고 관 주도와 정치적 압력, 타성에 젖은 기존 연극계 풍토라는 안팎의 상황과 싸운다. 사진은 ‘화학작용2’에 참여한 김정 연출의 연극 <꿈>. 화학작용2 제공
‘화학작용2’ ‘산울림고전극장’ 등
1980년대생 주축 30대 연극인들
무대 뒤에서 목소리만 들려주거나
영화와 접목하는 형식 실험중
이전 세대 생각 과감히 부정도
1980년대생 주축 30대 연극인들
무대 뒤에서 목소리만 들려주거나
영화와 접목하는 형식 실험중
이전 세대 생각 과감히 부정도
“기성 연출가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도전하지 않고 관 주도 단체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생함은 사라지고 연출들의 이름만 무대 위에 남았다. 나 역시 무엇을 위해 연극을 하는지 혼란스럽다. 새로운 배우, 새로운 대본, 새로운 형식, 새로운 해석,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김정 연출)
지금 서울 대학로에선 젊은 극단들의 ‘춘투’가 한창이다. 1980년대생이 주축인 30대 연출, 작가, 배우가 “왜,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연극을 할지”를 캐묻는다. 도전과 실험정신의 참호를 파고, 자신과 세상에 맞서 ‘진지전’을 벌인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관 주도와 정치적 압력, 타성에 젖은 기존 연극계 풍토라는 안팎의 상황 모두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 30대 또래의 도전과 실험정신
‘화학작용2’가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진행중이다. 30대 연출가가 이끄는 12개 극단이 2월17일~3월20일 두 극단씩 짝을 이뤄 릴레이식으로 올리는 연극축제다. ‘화학작용’은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해 2014년 시작한 예술협업운동이다. 연극협동조합이 극장을 공동운영하는 촘촘한 연대라면 ‘화학작용’은 단기간 축제에 함께하는 느슨한 연대다. 이들의 문제의식을 해시태그로 표현하면 #30대, #동시대, #대학로, #생존과 지속 등이다.
올해 공연을 보면, 먼저 형식 실험이 눈에 띈다. 기존 낭독극이 무대장치 없이 대사로만 채워졌다면, <여기는 오디오극>에선 소품 몇개만 놓은 무대 뒤에서 목소리만 들린다. 보이지 않는 배우의 연기라는 형식 실험은 되레 관객의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극단 앤드씨어터, 신아리 연출) “당신의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인생게임>은 ‘라이브영상연극’이다. 배우의 연기와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이 모니터로 중계된다. 영화와 연극의 접목 실험이다.(공동창작집단 가온, 서현우 연출)
이전 세대의 생각을 부정하기도 한다. “자살은 없다”라는 주제의 <시멘트 時ment>는 기존 사고체계를 부정하며 뇌사, 부모, 태풍 등으로 실존적 위기를 표현한다. 마치 ‘우리는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극단 척, 이명우 연출)
물론 정치적 함의를 담은 작품도 있다. 귄터 아이히 원작의 <꿈>은 “모든 것은 변증법적으로 연관됐고 멀리 떨어진 곳의 참사도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발언한다. 연출자는 지난해 10월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공연을 방해받고 릴레이 시위를 벌인 바 있다.(프로젝트 내친김에, 김정 연출) ‘창작스튜디오 자전거날다’의 <개>(최재성 연출)와 극단 걸판의 <삼마미아>(김기일 연출)도 이목을 끌었다.
■ 동시대 고민하는 ‘스스로 만든 판’
대학로에서 연극 한편을 올리려면 적어도 5000만원이 든다. 최소비용으로 열흘 공연할 경우에도 2000만원 선이다. 젊은 극단에는 ‘넘기 힘든 벽’이다. ‘화학작용2’는 그 벽을 넘는 ‘사다리’다. 기존 연출한테 도제식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극장을 공동으로 쓰면서 서로의 의식, 고민과 기술을 공유한다. 기획을 맡은 이연주 연출은 “화학작용이라는 축제가 소중한 것은 서로한테 도움과 즐거움을 주는 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 주제를 “우리가 기다려왔던 연극은 바로 우리다”로 잡았다. 기존의 시각과 발성법을 넘어 스스로 판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연출동인 ‘혜화동1번지’처럼 선배의 추천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조직하는 형태다.
‘화학작용’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판이라면, 기존 극장이 만든 판에서 ‘멋대로 노는’ 젊은 극단들도 있다. 오는 13일까지 그리스 고전을 주제로 올리는 ‘2016 산울림고전극장’이다. 극장 쪽은 “주제만 던져주며 판을 벌였더니, 젊은 극단들이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자기 맘대로 놀았다”고 했다. 여배우 3명으로 10명 이상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오레스테이아>(극단 달나라동백꽃, 윤혜숙 연출), 남녀의 역할을 뒤바꾼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극단 해적, 황선택 연출)의 형식실험에 더해, 20일까지 공연하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창작집단 라스, 이기쁨 연출)는 발칙한 언어로 남녀관계의 이면을 파헤친다.
대학로 곳곳엔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젊은 극단들의 ‘춘투’를 응원하는 느낌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대학로 곳곳에 나붙은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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