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빛의 제국’. 사진 국립극단 제공
리뷰 | 연극 ‘빛의 제국’
김영하 소설 원작…한불 공동제작
귀환명령 받은 주인공의 하루 쫓아
느린 템포의 연출 자칫 지루할수도
김영하 소설 원작…한불 공동제작
귀환명령 받은 주인공의 하루 쫓아
느린 템포의 연출 자칫 지루할수도
누구는 ‘느림의 미학’이라 할 것이고, 다른 누구는 ‘지루함’이라 할 것이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낯선 연출 기법이 연극 <빛의 제국>(연출 아르튀르 노지시엘)의 무대를 채웠다.
2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남파 간첩 ‘김기영’(지현준)은 어느날 북쪽으로부터 ‘4호 명령’을 하달받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무조건 귀환하라! 김기영은 서울 시내를 무작정 걸으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연극은 그의 하루 행적을 뒤쫓는다. 그는 과연 노동당의 명령에 따를까?
여기에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아내 ‘장마리’(문소리)의 행적이 더해진다. 평범한 직장여성이지만, 부부 간의 소통부재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젊은 대학생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두 명의 대학생과 함께 여관을 찾는 모습까지 나온다. 연극 막바지에,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는다.
연극은 소설가 김영하의 같은 이름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2015~16년 ‘한불교류의 해’의 공식 사업으로 선정돼 우리나라 국립극단이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와 공동으로 제작했다. 오는 5월 프랑스 현지 공연도 예정돼 있다.
작품을 보면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 예술감독인 노지시엘의 연출 기법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배우들은 등·퇴장이 거의 없이 무대 한 쪽의 탁자 둘레에 앉아 자신의 연기 차례를 기다린다. 특히, 무대 뒤편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두 개 배치돼 있어, 동영상이 각 배우들의 연기에 맞춰 상영된다. 영상은 프랑스 쪽 전문가가 찍었는데, 구도와 템포 등에 세련미가 느껴진다. 연극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결합한 사례일 것이다.
더욱 주목되는 건, 연출의 느린 템포다. 장면 전환에서 배우의 움직임은 일부러 느려진다. 무대에서 옷을 벗는 모습은 당연하겠지만, 대체로 암전으로 처리됐던 옷을 다시 입는 모습도 무대 위에서 느릿느릿 이뤄진다. 어떤 관객은 이른바 정서적 충만을 느끼겠지만, 다수는 지루함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연극의 메시지 쪽에 이르면 자칫 구경거리가 됐다는 불쾌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배우들은 간혹 무대 한쪽의 스탠딩 마이크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분단 체험’을 발표한다. 오빠가 군대에 갈 때, 만화영화 <똘이 장군>을 봤을 때, 분단의 현실을 체험했단다. 프랑스 연출은 분단을 신기하게 느꼈을 테지만, 핵·미사일 실험이 이뤄지고 개성공단이 끝장나는 모습을 보는 우리한테 분단은 잔혹한 현실이다. 연극은 27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푯값 2~5만원.
한편, 국립극단이 유명 배우 중심으로 무대를 꾸리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연극계 안에선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연극계의 맏형임에도 민간극장들처럼 ‘스타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극단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올린 <시련>과 <겨울이야기>는 각각 배우 이순재와 헝가리 연출이 흥행 요소였다. 이번에는 배우 문소리가 흥행을 이끌고 있지만, 정작 연기는 연습 부족이 느껴진다. 물론 이순재는 애초부터 <시련> 등의 제작을 제안했고, 문소리는 연출이 캐스팅한 경우라서 별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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