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농쿠르. 사진 연합뉴스
유럽 왕가 혈통의 명지휘자
세계적인 지휘자 아르농쿠르가 5일(현지시각) 밤 오스트리아 빈에서 별세했다고 6일 가족들이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향년 86.
1953년 첼리스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을 결성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고음악 연주단체다. 72년엔 첼로와 활을 버리고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으로 데뷔한 그는 카라얀, 카를 뵘, 카를로스 클라이버 등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반열에 올랐다. 89년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과 함께 18년에 걸쳐 바흐의 칸타타 전곡 녹음을 마쳤다. 20세기 후반 가장 혁신적인 지휘자로 손꼽히는 그를 사람들은 ‘바로크음악 부흥의 교황’으로 불렀다.
2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자랐다. 그는 신성로마제국과 유럽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어머니는 합스부르크 왕가 요한 대공(1782~1859)의 손녀다. 음악가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 7번 교향곡을 들은 뒤다. 그는 빈 음악아카데미에서 4년간 첼로를 전공했다. 이때 첼로의 전신으로 불리는 원전 악기 ‘비올라 다 감바’도 함께 공부했다. 그는 52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끄는 빈 심포니오케스트라에 들어가 69년까지 함께했다.
아르농쿠르가 이끄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은 62년 이후 퍼셀의 ‘비올 환상곡’,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등을 녹음하며 명성을 떨쳤다. 66년 미국·영국 순회, 68년 독일 순회 공연을 거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1년엔 ‘마태수난곡’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72년부터 20여년 동안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후학들도 가르쳤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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