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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군인은 불쌍하다, 시민도 불쌍하다

등록 2016-03-13 20:36

리뷰 | ‘예술 검열’ 피해자 박근형 연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탈영병·가미카제·무장단체·천안함
네개의 다른 시공간에 선 군인들
희생 강요당하며 죽음에 이르지만
전쟁같은 현실 사는 사람들과 함께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개인들일 뿐
1945년 일본 오키나와,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선택한 조선인 병사.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1945년 일본 오키나와,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선택한 조선인 병사.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1. 2015년 경남, 제대를 앞두고 탈영한 병사. #2. 1945년 일본 오키나와,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선택한 조선인 병사. #3. 2004년 이라크 팔루자, 살아남기 위해 납치와 살인을 반복하는 이라크 무장단체. #4. 2010년 백령도, ‘사고’의 진실에 침묵하는 초계함(천안함) 병사.

너무도 다른 네 개의 시간과 공간을 살지만, 군인들은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고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0일 박근형 작·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막을 올렸다. 군인들은 관객과 함께 이런 모순적 시공간으로 ‘파병’돼 국가주의라는 주제로 ‘진격’한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정치 검열’ 파문의 중심에 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 대상작으로 선정했지만, 심사결과를 뒤집고 박근형에게 포기를 강요했다. 그는 2013년 그리스 고전을 재해석한 <개구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빗댔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0년 백령도, ‘사고’의 진실에 침묵하는 초계함(천안함) 병사.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2010년 백령도, ‘사고’의 진실에 침묵하는 초계함(천안함) 병사.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이번에도 천안함의 진실, 김선일 참수 등 민감한 장면이 시선을 끈다. 천안함으로 보이는 초계함 침몰 사고의 생존자 ‘안 이병’은 “물이 다리부터 허리, 어깨까지 차오르는데 저는 울고만 있었다구요. 저는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라며 울먹인다.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이 억압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합동위령제가 끝나자 안 이병은 “저는 그날 죽은 자들의 곁에서 다 보았습니다”라고 외친다. 그 순간 ‘검은 옷의 잠수부’가 물속에서 나와 안 이병을 껴안는다. 수중고혼이자 생존자 내면의 검은 상흔이다. 죽은 이도 살아남은 이도, 군인은 불쌍하다.

이라크 무장단체의 참수 장면은 ‘김선일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미군에게 피붙이를 잃은 무장단체 병사들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군 군납업체 한국인 직원을 참수한다. 무장단체는 미국의 침략에 고통받는 희생자이며, 미국의 동맹(또는 식민지) 한국의 노동자를 죽이는 가해자다.

한-미 동맹이나 국가간 거래, 전쟁, 시스템 속에서 군인은 죽음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해외 파병된 군인 송중기는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인류평화라는 대의명분은 ‘숭고’하기만 하다. 게다가 생사의 전선에서 사랑을 불태운다. 화려한 화면 뒤에 가려진 수많은 진실에 대해서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줄까?

탈영병(이원재)은 삼대독자이면서도 자원입대했다가 제대를 코앞에 두고 탈영한다. “탈영을 했는데 갈 곳이 없어요.” 병영의 안과 밖은 다를 바 없는 전쟁터다. 그러므로 불쌍한 것은 군인만이 아니다. 군인들과 함께 ‘파병’된 관객도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연극은 발언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고, 모든 시민도 불쌍하다고, 우리 사회도 불쌍하다고.

초연이라 극작과 연출 모두 다듬을 부분이 있지만, 극단 골목길의 대표 레퍼토리로 정착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10월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한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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