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해적 단원들이 2014년 연극 <형민이 주영이>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 함께 모여 기뻐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강현구 배우와 다섯번째 황선택 연출, 앞줄 오른쪽 첫째 이지영 배우가 보인다. 극단 해적 제공
[젊은극단을 찾아서] (2) 해적
연극 전공자는 한명도 없지만
무대 절박한 배우들 의기투합
“본 것, 느낀 것 자유롭게 표현
투박해도 희로애락 전달할 것”
연극 전공자는 한명도 없지만
무대 절박한 배우들 의기투합
“본 것, 느낀 것 자유롭게 표현
투박해도 희로애락 전달할 것”
“난세다. 난세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권력에 미쳐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극단 해적(대표 황선택)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게릴라극장, 3월20일까지)은 이런 절규로 연극의 문을 연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두 도시의 여인들은 평화를 위해 ‘성 파업’에 나선다.
고대 희랍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류시스트라테〉(기원전 411)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극단 해적의 태도와 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을 둘러싼 기존 관념에 과감하게 도전할 뿐더러, 전쟁을 고집하는 아테네 장군의 이름은 ‘바그네우스’이다.
극단 해적은 창단부터 평범함과 거리가 많이 멀었다. 2013년 어느날 새벽 6시께, 황선택(33) 대표의 자취방으로 한 친구가 술에 취해 울면서 찾아왔다. 연극을 하고 싶은데, 배우로 써주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황 대표는 난생 처음으로 직접 극을 쓰고, 연출에 나섰다. <휘파람을 부세요>는 이렇게 무대에 올려졌고, 그게 창단의 계기가 됐다. 규율에 얽매이는 해군보다 해적이 되라고 하는 말에서 극단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극단 해적에는 연극 전공자가 한 사람도 없다. 황 대표는 서울 신일고 야구부의 중견수였다. 고교 졸업 뒤 긴 방황을 이어가다, 친구의 소개로 연극판을 기웃거렸다.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 떠나려던 때 극단 ‘골목길’을 만났다. 3일 밤낮을 극장 앞에서 기다렸고, 이윽고 박근형 연출한테 허락을 받아 어깨 너머로 연극을 배웠다. 배우 강현근(33)은 황 대표의 고교 시절 친구로,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설현장에서 현장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어”, 해적 창단부터 결합했다. 황 대표가 극작을 하는데 맞춤법이 틀리면, 강 배우가 잡아준다. 배우 정현구(33), 이지영(˝), 이화(˝)와 차성만(32), 김민건(20) 등이 함께 해적선을 타고있다.
극단 해적은 야전성을 중시한다. “잘 하고, 잘 배우고, 잘 만들어진 배우는 좋아하지 않아요. 절박한데 무대가 없는 숨은 보석같은 배우들과 함께 합니다.” 그리고 단원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데 주력한다. “본 것, 느낀 것을 자유롭게 연극으로 표현한다”는 게 목표이다.
실제 황 대표는 살면서 느낀 것을 무대에 올렸다. 2014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형민이 주영이>는 동네 막걸리집 아줌마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남편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 작품을 떠올렸다. 지난해 같은 축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받은 <무풍지대 로케트>는 동네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평소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리는 데서 극의 모티브를 따왔다.
극단 해적은 자기들이 부족한 것을 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연극을 한다. 연극이론은 잘 모른다. 거칠다. 아예 깔끔한 게 싫다고 했다. “사람을 울리는 건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투박하더라도 상처와 아픔, 기쁨을 전달할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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