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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노고단 휘감은 ‘통성’…“뱃심 짱짱해져요”

등록 2016-03-20 19:12

지리산 자락 구례 천은사에서 염경애 명창이 성긴 눈발을 뚫고 ‘통성’으로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고 있다.
지리산 자락 구례 천은사에서 염경애 명창이 성긴 눈발을 뚫고 ‘통성’으로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고 있다.
염경애 명창 인터뷰

‘강산제 심청가’ 26일 공연 앞두고
지리산서 한달 넘게 공력 쌓아
생애 여덟번째 ‘4시간 완창’ 도전
염경애 명창
염경애 명창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길목 구례 천은사, 성긴 눈발을 뚫고 ‘통성’이 산을 휘감았다. 배에서 바로 뽑아내는 소리가 통성이다. “심봉사 깜짝 놀래 아버지라니 아버지라니 누구요 (…) 임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통성의 주인은 염경애(43) 명창이다. ‘강산제 심청가’ 완창을 앞두고 한 달 넘게 지리산에서 공력을 쌓는 중이다. 4~5년 전부터 완창하기 전엔 지리산을 찾았다. 예부터 소리꾼들은 득음을 위해 독공(獨功)을 했다. 폭포나 토굴에서 반사음으로 창법을 교정하는 발성 수련이다. 염 명창은 “스승 조상현 선생님께서 독공을 많이 하셨다. 독공과 비슷하게 산사에서 힘찬 계곡 물소리를 이겨내니까 내공이 쌓이고 뱃심도 짱짱해진다”고 했다.

이달 초 눈 내리는 천은사에서 염 명창을 만났다. 그는 오는 26일 서울 국립극장 케이비(KB)하늘극장에서 ‘염경애의 심청가-강산제’를 선보인다. 4시간에 이르는 생애 여덟 번째 완창 도전이다.

염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다. 2002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최연소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염 명창은 조선 순조 무렵 8명창으로 손꼽혔던 염계달의 후손이다. 그는 3옥타브를 넘나들면서도 우렁찬 목청을 타고났다.

염 명창은 ‘국창 조상현’으로부터 2004년부터 5년에 걸쳐 강산제 심청가를 다 뗐다. “선생님은 변화무쌍한 성색, 성음을 음악의 흐름에 맞게 표현하도록 했다. 심 황후가 맹인잔치를 벌이는 대목에선 통성으로 우는 ‘진계면’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며 우는 대목은 ‘단계면’으로 감정표현이 달랐다.” 조 명창은 선율과 장단을 익히는 정도를 넘어 옛 더늠(예부터 내려오는 음악적 표현기법)을 표현하도록 했다.

‘강산제’는 박유전 명창이 조선 고종 시대에 창시한 유파다. 서편제의 애잔함과 동편제의 웅장함이 어우러진 소리제(制)로, 강산제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심청가다. 염 명창은 고모인 염금향 명창, 조상현 명창 문하에서 ‘강산제 심청가’를 익혔다.

조 명창의 제자 사랑은 각별했다. “제가 전남대 예술대 학생회장을 할 때 ‘5·18 청문회’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게 가풍이다. 하하하. 그런데 그 사실을 들은 뒤 선생님이 저를 ‘사상가’라고 불렀다. 제가 밤늦게까지 광주시립국극단에서 연습을 하면 예술감독이던 선생님께서 ‘시커먼 년, 목구멍 하나 빼곤 뭐 볼 것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입은 걸지만 뜻은 곱다.

심청가는 염 명창에게 ‘소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심청가에서 제가 지향할 판소리 어법의 감을 잡았다. 소리의 맛과 기교(시김새)가 아닌 ‘소리의 이면’, 곧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종소리는 종소리가 나야 하고, 물소리는 물소리가 나야 한다. 자연의 소리, 본질의 소리에 가까운 게 판소리다. 잘못 배워 표현하는 게 많다. 소리의 이면에 충실해야 한다.”

염 명창은 “판소리가 너무 소외됐다. 귀명창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뜨는데~.” 심청가 한 대목이 다시 지리산을 휘감았다. 많은 이들이 판소리에 눈을 뜨고 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 명창의 마음이다.

구례/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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