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시사평론가(앉은 사람 오른쪽부터), 한승헌 변호사,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가 1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연극 <보도지침> 연습을 참관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실제 주역들이 본 연극 ‘보도지침’
5공 보도지침 사건 ‘법정 연극’으로
한승헌·김종배씨 등 연습현장 방문
5공 보도지침 사건 ‘법정 연극’으로
한승헌·김종배씨 등 연습현장 방문
“야당 전당대회를 1단으로 보도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을 때, 모든 신문 2면에 실렸습니다. 국방부가 희생 장병을 위한 성금을 회식비로 사용한 사건이 터졌을 땐, 절대 보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국 보도를 못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보도지침이라고 확신합니다.”
연극 <보도지침>에서 법정에 선 기자 ‘주혁’이 검사의 심문에 답하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제5공화국 시절 언론통제 지시인 ‘보도지침 사건’을 법정드라마로 재구성했다. 전두환 정권은 날마다 언론사에 ‘어떤 내용으로 어느 면 어느 위치에 몇 단으로’ 보도할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연습실, 당시 보도지침 사건의 주역인 한승헌 변호사,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와 김종배 시사평론가가 연습을 지켜봤다. 1986년 보도지침 584건을 월간 <말>지에 폭로한 김 기자 등은 국가보안법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고, 한 변호사를 비롯한 인권변호사들은 대거 법정투쟁에 나섰다.
“당시 판사는 검사가 말하는 대목을 그대로 따라 했다. ‘김대중 사진을 쓰지 말라’는 대목을 놓고 내가 한마디 했다. ‘김대중씨 얼굴도 국가기밀인가?’라고.”(한승헌, 일동 웃음)
“연습을 보면서 ‘불낸 자를 처벌하지 않고 불냈다고 신고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변론문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제도언론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김주언)
보도지침 사건은 올해로 30주년이다. 정부의 언론통제는 직접통제에서 간접통제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김 기자의 생각이다. “당시엔 문화공보부 장관이 신문사 사주에게 전화를 했다. 언론사 등록을 취소할 수 있어 법적인 통제가 가능했다. 반면 지금은 은밀하고 유연하게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을 통한 간접통제가 성행하고 <문화방송>, <와이티엔> 해고자들은 아직 복직하지 못했다. 지금도 언론통제는 계속되고 있다.”
연극에서 정권의 언론통제와 권언유착 실태는 매우 사실적이지만, 김 기자와 한 변호사 등은 가공인물로 각색했다. 기자-변호사-검사를 통해 보도지침의 실체를 법정에서 캐는 한편, 연극반 출신인 이들의 과거를 통해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을 중첩한다. 연극은 진실을 다투는 ‘법정’과 진정성을 묻는 ‘무대’라는 두 장면을 번갈아 보여준다. 한 변호사와 김 기자는 이런 사실성과 연극성의 중첩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연극 팬이었고 김 기자는 탈춤반 출신이었다.
“연극 <한씨연대기> 초연하던 시절(1985년)부터 실험극장 등에 들러 가끔 연습 장면을 보곤 했다. 실제 변론과 연극은 같으려야 같을 수가 없다. 연습을 보니, 나보다 더 진짜 같다. 여러분은 완전히 ‘알파고’다.”(한승헌)
“대학에서 임진택 선배 등과 함께 탈춤반을 했다. 실존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예술의 영역이다. 다만, 보도지침 사건을 현재 상황과 연결했으면 좋겠다. 가령 세월호 참사 때 ‘(구조인력을) 몇천명 동원했다’는 오보 등을 집어넣으면 어떨까?”(김주언)
연극 <보도지침>은 프로듀서 이성모, 극작 오세혁, 연출 변정주가 힘을 모았다. 기자 역에 송용진·김준원, 검사 역에 최대훈·에녹, 변호사 역에 이명행·김주완. 이달 26일~6월19일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02)3454-14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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