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전국싸움대회’. 사진 극단 문 제공
리뷰 l 연극 ‘전국싸움대회’
국정원 스포츠팀 싸움대회 개최
알고보니 비밀프로젝트 은폐용
곳곳 드라마 ‘미생’ 패러디 폭소
국정원 스포츠팀 싸움대회 개최
알고보니 비밀프로젝트 은폐용
곳곳 드라마 ‘미생’ 패러디 폭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다.”
연극 <전국싸움대회>(작·연출 정진새, 극단 문)는 이런 장난기 어린 대사로 시작한다. 실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우승상금 50억원을 두고 전국적인 싸움 대회가 열린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관객들은 막바지에 ‘지독한 현실’을 보게 될지 모른다.
지난 18~20일 공연된 이 연극은 지난달부터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오르다’ 무대에 올려진 ‘화학작용2-오르다’ 연극 행사의 마지막 무대였다. 젊은 연극인들은 이 행사에서 6주 동안 잇달아 12개의 극단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에서 문제는 전국싸움대회를 누가, 왜 개최하느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인턴사원 ‘박그래’는 어느날 ‘국정원 스포츠팀’에 배치된다. 스타크래프트 프로선수 출신으로 고졸 학력이 전부다. 팀은 김연아, 류현진 등 1급 선수들을 관리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하는 일을 맡고 있다. 박그래는 국정원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은 국민의 무의식까지 관리하지 말입니다.”
어느날 국정원 수뇌부는 ‘대형 프로젝트’ 사내 공모를 벌이고, 팀장인 ‘장 과장’은 얼결에 박그래가 내놓은 전국싸움대회 아이디어를 제출한다. 수뇌부는 적극 추진을 명령한다. 스포츠팀은 국정원의 존재를 숨기며 대회 성사에 나선다. 관객은 연극 중반쯤 작품이 티브이 드라마 <미생>의 패러디임을 눈치채게 된다. 장 과장은 국정원에 대해 “우리는 모두 ‘밉생’이야”라고도 한다. 온갖 말 비틀기에 관객의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연극은 국정원 ‘공작’과 전국싸움대회의 준비·진행 과정이 나란히 교차한다. 국정원의 세 사람을 여배우들이 연기하고, 싸움대회 쪽은 남자 배우 세 사람이 깔끔하게 풀어낸다.
막바지, 관객은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국정원 스포츠팀이 4000억원의 예산을 받아 싸움대회로 온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 국정원 수뇌부는 200조원짜리 대형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키리졸브 한·미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었다. 장 과장은 말한다. “북핵은 없는 걸로 확인됐어. 48시간만 참으면 돼!”
정진새 연출은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구상했던 작품이다. 올해 초 북핵 실험과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져 연습 도중 대본을 급히 수정했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다시 무대에 올려질 것으로 보인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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