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사진가의 ‘부산을 사수하라’ 연작 중 한 작품. 사진 노형석 기자
이 사진은 부조리 연극의 무대장치처럼 보인다. 눈길 가장 가까운 쪽에는 할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아 아이스바를 쪽쪽 빨아먹고 있다. 그의 등 뒤로는 ‘안전제일’이라 쓴 공사장 차단선이 지나간다. 그 너머엔 60여년 전 전쟁 나 피난가던 어머니와 아들, 딸의 청동상이, 좀더 깊숙한 안쪽엔 뜯어낸 옛 건물의 터가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눈 깊은 관객들이라면 사진에서 작가가 포착한 인물과 공간이 어떤 연관성도 없이 따로 놓여 있으면서도, 비루한 어떤 정서를 통해 서로 내밀하게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큐사진가 강용석씨가 지난 1년 사이 찍은 ‘부산을 사수하라’ 연작들은 한국인에게 잠재된 뿌리없는 ‘난민성’의 징후를 눈에 잡히는 이미지로 표현하려 한 작업들로 비친다. 부산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지난달부터 선보여온 이 연작들은 매년 부산의 공간과 사람들을 주제로 작업한 중견사진가 초대전 ‘부산참견록’의 올해 출품작들이기도 하다. 90년대 이래 동두천 기지촌과 매향리 미군사격장, 국토 곳곳의 전쟁 기념물들을 찍었던 그는 이 전시에서 전쟁유산들이 남긴 무형의 정신적 상처를 좇는 몽환적인 여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부산역전에 가방을 끌고 가는 여행객들 뒷모습을 시작으로 35㎜ 카메라를 들고 부산의 일상들을 기록한 필름 사진 73점이 전시장에 내걸려 있다. 구도심인 부산역전, 중앙동, 남포동, 감천동·수정동 산복도로 동네 등에서 사람들의 뜨내기 같은 움직임들에 주목한 사진들은 ‘전쟁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난민’이란 진실을 불안정한 세로축 사진틀로 보여준다. 일일이 현상한 회색톤의 흑백사진들로 표현된 풍경들은 절묘하게 포착된 역설적 장면들의 대비가 유난스럽다. 굵은 팔뚝을 드러낸 경찰관 광고판 아래서 가냘픈 손을 눈 위에 올리고 바라보는 할머니, 호피무늬 옷을 입고서 달려드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승합차와 맞닥뜨린 카트 아줌마, 반공소년 이승복상이 있는 공원에서 반갑게 악수하는 중년남자들의 모습 등이 단적인데, 이런 장면들은 사실 어수선하고 어색한 한국 도시 구석구석의 전형적인 모습들이기도 하다. 공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부산 중노년들의 맥빠진 일상 풍경이 작은 사진(16×20인치)들로 이어지다가 경북 칠곡에서 매년 열리는 낙동강전투 재현극이 큰 사진(20×24인치)으로 튀어나오면서 시각적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후반부엔 부산의 전쟁기념물과 안보집회장, 해병대 노병들의 권태로운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연속되다가 상처투성이 가로수가 초현실적으로 육박해오는 사진으로 전시가 끝난다.
다큐사진의 정석처럼 틀잡힌 구성과 순간을 대비시키는 연출력이 눈을 붙잡는다. 하지만 변질된 전쟁 상흔을 찾는다는 의도가 이런 형식과 얼마나 아귀가 맞는지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 부산이란 사전지식이 없다면, 출품작 상당수는 이 땅 곳곳에 보이는 을씨년스럽고 화석화된 풍경들과 다를 바 없다. 부산의 공간사, 지역사를 오래 섭렵하지 않고서 지역 특유의 전쟁 유산을 더듬는다는 화두를 내세운 건 다분히 의욕과잉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5월4일까지. (051)746-0055.
부산/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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