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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명예는 묘비명” 권력을 조롱하다

등록 2016-03-24 18:54수정 2016-03-24 21:12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헨리4세’ 14년만에 재공연
셰익스피어 원작…액션 뛰어나
다다다닥! 달려가는 소리. 딱, 딱, 딱! 칼 부딪치는 소리. 으랏차차! 뒤돌아차기. 혹시 무협영화 찍나? 지난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 연극 <헨리4세> 연습이 한창이다. 액션 장면이 뛰어나지만 권력의 본질에 대해 캐묻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정극이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장은 2002년 국내 초연한 지 14년 만에 다시 이 작품을 올린다. 리처드2세의 왕위를 찬탈한 헨리4세(강신구 분)는 자신의 권력도 찬탈당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왕과 귀족이 벌이는 정쟁과 전쟁이 한 축이라면, 헨리 왕자(박정복 분)와 그의 친구 폴스타프(이창직 분)가 쏟아내는 유쾌한 풍자가 또 한 축이다.

“반란이라, 놀랍지도 않다. 우리 아버님이 왕이 되신 사실 자체가 반란이니까!”(헨리 왕자) “너 내일 부친 앞에서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엄청 야단맞는다. 친구로서 도와주지. 미리 답변 연습을 하자.”(폴스타프) 머리에 왕관 대신 걸레를 얹은 폴스타프는 왕 흉내를 낸다. 이어 역할을 바꿔 이번엔 헨리 왕자가 왕 흉내를 낸다.

역할 바꾸기 놀이는 매우 정치적이다. 왕자가 아버지인 헨리4세의 왕위를 뺏으려는 욕망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왕은 왕위를 찬탈한 ‘정통성 없는 권력’이 아니던가.

왕자의 친구 폴스타프는 뚱뚱하고 늙은 술고래에다 난봉꾼이다. 권력의 위선을 조롱하는 그는 “명예라는 단어 속은 텅텅 비었다. 명예는 묘비명이다”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이창직 배우는 폴스타프 역만 이번이 세번째다. 김 연출은 “<헨리4세>를 올리는 건 폴스타프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최고의 희극적 인물이다.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은데 우리나라엔 이창직 배우가 있다”고 했다.

연습이 막바지로 치달았다. “어째서 왕관을 머리맡에 놔두고 계실까”라며 왕자가 왕관을 쓰자 잠을 깬 왕이 “반역이다, 반역이다”라고 외친다. 폴스타프와 함께했던 역할 바꾸기 놀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헨리 왕자가 왕위에 올라 처음 한 일은 ‘토사구팽’이다. 친구 폴스타프는 물론 처형됐다.

권력의 본질이라는 주제는 진지하지만, 활기찬 액션과 빠른 전개로 알기 쉽게 풀었다. 맛깔나고 속도감 있는 명대사는 오세혁 작가의 빼어난 각색 덕분이다. 왕에서 매춘부까지 출연 배우만 28명, 오랜만에 만나는 대형 정통 연극이다. 29일~4월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02)399-1794.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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