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걸판. 사진 걸판 제공
[젊은극단을 찾아서] (3)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대학 동문 5명이 2005년 창단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폭 넓혀
창작극 들고 집회현장 등으로
대학 동문 5명이 2005년 창단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폭 넓혀
창작극 들고 집회현장 등으로
리어왕과 돈키호테가 서울역 광장에 왔다. 각각 딸들에게 쫓겨났고, 정신병원에서 나왔다. 두 노인은 그들만의 ‘이상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먹을 게 생기면 백성이 먼저 먹고, 남은 게 있으면 돈키호테가 먹고, 그래도 남으면 리어왕이 먹는다. 4월10일까지 서울 게릴라극장에 오르는 연극 <늙은 소년들의 왕국>이다. 그런데 ‘난리 블루스’도 아니다. 비좁은 소극장에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29명 배우가 총출동해 지지고 볶는다. 용역깡패끼리 팀장,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르고,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루저들이 데모를 벌인다. 짧게 줄여 발음하면 실명이 되는 “‘그~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대사도 빵빵 터진다. ‘걸판’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들은 동시대 현실을 놓치지 않되, 장난과 난장으로 재미있는 무대를 추구한다.
걸판은 길 위에서 시작했다.
2005년 오세혁·최현미 등 한양대 안산캠퍼스 풍물패 동문 5명이 모였다. 10분 짜리 창작 마당극을 들고 집회 현장 등 방방곡곡 길 위를 떠돌았다. 유랑극단이다. 걸판은 전원이 작가, 연출, 배우, 스태프였다. 2008년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엔 일하는 여성에 대한 마당극을 만들어 11곳을 순회했다. 통일 마당극으로 독일 3곳도 돌았다. 인기 좋은 작품은 하루에 3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2011년 상임작가 오세혁은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아빠들의 소꿉놀이>, <크리스마스에 삼십만원을 만날 확률> 2편으로 동시 등단했다. 그해 8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연출가전에서 <그와 그녀의 옷장>이 대상과 연출상을 받으면서 걸판의 이름은 서울 대학로에도 알려졌다. 협동조합 대한민국소극장열전(대소열)에 가입해 지역 연극단체와 고민을 나누고 공동극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걸판은 지난 11년 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처음과 달라진 건 유랑극단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극단 걸판과 또 다른 창작프로젝트집단 ‘걸판엑스(X)’로 분화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길 위를 떠도는 전통적인 걸판’ 외에 따로 창작조직을 만든 것이다. 기존 조직이 커지면서 물이 고이듯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걸판을 이끌던 오세혁·최현미 작가 겸 연출과 박기태 작곡가는 걸판X팀으로 간다. 앞으로 외부 제작집단과 다양한 창작 협업을 모색하게 된다. 기존 걸판 조직과 재정은 이중길 대표가 맡아 꾸린다. 경계없는 걸판의 활동이 유랑민 또는 유목민적이라면,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는 창작집단 걸판X의 활동은 유격대를 닮았다. 유랑과 유격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걸판의 힘을 그들의 한 선배는 “들소떼 같은 힘”이라고 표현했다.
4월이 오면 걸판 단원들의 가슴은 저릿하다. “2년 전 지도를 받던 안산 단원고 연극반 학생들이 ‘한 번 와서 연습을 봐달라’고 초청했다. <늙은 소년들의 왕국> 5월 초연을 앞둔 시점이라 너무 바빠 못 갔다. 그리곤 16일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희생되고….” 오세혁이 끝내 덜지 못할 미안함이다. 그래서 걸판을 안산에 뿌리 내리는 작업에 더 신경쓴다. 우선 어린이극단을 만들고 청소년 연극을 지도하는 일부터다. 걸판은 올해 안산문화재단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됐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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