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연극 ‘리차드 3세’. 사진 국립극단 제공
중국 현대연극 ‘리차드 3세’
한-중 교류 차원 국립극단 초청작
전통과 결합 통해 권력 허무함 그려
한-중 교류 차원 국립극단 초청작
전통과 결합 통해 권력 허무함 그려
막이 오르고, 중국 전통 타악기 연주가 무대에 울려퍼진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잇달아 등장해 왕의 승전을 축하한다. 중국 경극의 한 장면일 듯하지만, 영국에서도 인정받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연극이다.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 <리차드 3세 理査三世>(연출 왕샤오잉)는 중국 현대 연극의 현주소를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우리나라 국립극단이 초청한 공연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영국 초청공연을 갔던 작품이기도 하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원작을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작품은 원래 영국 장미전쟁 시절 실존인물인 리처드 3세를 소재로 한 셰익스피어의 본격 역사극으로, 인간 권력욕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 극에서 글로케스터 공작(장둥위)은 형인 에드워드 4세의 충신들을 모함하거나 자객을 보내 살해하고, 그의 아들마저 제거해 자신이 왕위에 올라 리처드 3세가 된다. 하지만 권력에 취해 폭정을 일삼으면서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들어간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수양대군(세조)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무대는 꼽추인 리처드 3세의 신체적, 정신적 기형 상태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권력의 허무함 그 자체에 집중했다. 무대 뒤에는 살인, 음모, 욕망 등 인간의 죄악 12가지를 한 글자씩 써놓은 6장의 흰 천이 드리워져 있고, 흰 천은 붉은 물감으로 점차 물들어간다. 마지막 순간 “내게 말(馬)을 다오. 왕관을 내주겠다”는 유명한 대사가 ‘쏟아진다’.
작품은 중국 국가화극원의 야심작으로, 중국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했다. 각색을 맡은 루오다쥔과 국가화극원 부원장인 왕샤오잉 연출은 중국 연극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장둥위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국가화극원은 중국을 대표하는 국립극단으로, 중국 문화부 산하다. 이들은 2008년 <패왕기행>, 2010년 <2010 홍장미 백장미>를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국립극단은 한-중 교류 차원에서 지난해 우리 연극계에서 찬사를 받았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오는 10월 베이징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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