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작가
강요배 작가, 제주에서 회고전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려낸
사유·성찰 작품 80여점 내걸어
“오직 그림 그리는 생명체로서
제겐 살아가는 게 예술이지요”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려낸
사유·성찰 작품 80여점 내걸어
“오직 그림 그리는 생명체로서
제겐 살아가는 게 예술이지요”
바람타는 섬에서 수십년 세월을 겹겹이 포개며 불어온 바람이 그의 그림이 되었다. 제주의 맵짠 바람이 부려놓은 땅과 나무, 사람의 윤곽과 색조가 그 바람의 기운으로 붓질한 화폭에 버무러지면서 그의 삶 또한 만들어졌다.
제주의 풍광을 담는 화가, 4·3 항쟁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 강요배(64) 작가가 장강처럼 펼쳐진 그림 인생의 속내를 꺼내놓았다. 청백의 하늘과 선홍빛 야생화와 검푸른 바다, 어두운 시대에 부대끼는 인간군상들의 모습들이 질문과 성찰을 거듭해온 수십년 화폭에 펼쳐지고 있다. 격동과 침잠을 되풀이해온 사유와 성찰의 노정이 오롯한 그림들 자체로 다가오는 만남이다.
15일 막을 올린 제주도립미술관의 기획초대전 ‘한국현대미술작가, 강요배 : 시간속을 부는 바람’ 은 회고전이 아닌 그림일기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한 굽이굽이를 돌며 그리고 또 그려온 다기한 그림들을 소품, 대작 80여점으로 내걸었으나, 주인공은 그림이 아니라 작가가 일관되게 붓질하며 표출해온 생각과 의식의 흐름들이다.
검은 섬 오름 너머 누렇게 여명이 밝아오는 2010년작 ‘개천’으로 운을 뗀 전시는 막막한 푸른 하늘을 토끼 모양 구름이 서서히 덮어가는 ‘구름이 하늘에다’로 끝난다. 두 근작 사이의 막막한 전시 공간을 작가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60여년 인생의 시화전으로 꾸려놓았다. 짙은 흙빛 오름 위로 들어앉은 가없는 하늘과 그 위에 뜨고 지는 태양과 별, 출렁출렁 아물거리거나 포효하는 제주바다의 거친 결들이 그림으로써 삶을 살아온 작가의 분신이 되어 화폭 위에 들어앉았다. 대학시절부터 교사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끊임없이 쓰고있는 그의 웅숭깊은 글귀들이 그림들 사이를 수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는 1976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 대호다방에서의 첫 개인전 때 쓴 글에서 삶 자체와 공존의 울림을 최상의 가치로 삼겠다고 다짐한 이래 지금까지 올곧게 초심을 지켜왔다. 70년대 대학시절의 초현실적인 인물그림, 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 시절 처음 선보인 걸개그림, 태극도와 불화풍 그림, 80년대 장삼이사들의 인물군상 지판화·드로잉, 4·3항쟁의 역사주제화, 90년대 제주 정착 뒤 그린 원대한 제주의 자연그림들이 그의 다짐과 결기를 증언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고이 보관해두었던 60년대 유년시절의 크레파스 풍경화 등을 비롯한 어머니 컬렉션이 처음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어릴 적부터 모친의 배려로 자유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을 갈고 닦으면서 성찰과 사색의 그림 길을 걷게 된 작가의 내력 등이 보인다.
자신의 말처럼 “오직 그림그리는 생명체로서” 살아온 강요배 작가의 그림 편력은 미술의 장르적 속성을 벗어나 삶을 구현하는 길이었다. 제주 자연을 품은 토박이로서 자신의 내면과 역사를 내려다보고 주변과 관계를 나누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것을 화면에 구현하는 일관된 원칙아래 흘러온 것이 작가의 화력이었다고 기획자 한길순 학예사는 말한다. 80년대 현실참여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걸개그림 등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중과 교감했고, 92년 제주 4·3 항쟁의 진실을 담은 역사기록화 ‘동백꽃 지다’를 통해 리얼리즘 회화와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은 이런 노정의 일부를 이룬다. 이후 그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주제로 인간 감정이 서린 풍광을 성취한 대가로 뿌리를 내렸다. 시대와 역사에 충실하고 다기한 화풍의 변모를 감행했으면서도 따스하고 촉감적인 강 작가의 인물, 풍경화들은 지금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있다.
“제겐 살아가는게 예술입니다. 성찰하며 그리는 것 자체가 결국 새로움을 낳는 겁니다. 예술과 삶이 죽 같이 가면 그런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사실 에이아이(AI:인공지능)에게 난공불락의 유일한 적수는 화가지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리니까. 아니 인공지능의 원조지요. 향기 없는 꽃, 먹을 수 없는 사과를 그리는 거니까. 그리는 순간부터 진정한 인공을 그리는 겁니다.”
동양고전인 <주역>과 술을 끼고 그림으로 살아온 한평생이 아쉽지않다는 그는 이제 응축된 그림, 춤추듯이 그려 춤이 그림이 되는 경지를 실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7월10일까지. (064)710-4300.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창파(滄波·2015). 도판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구름이 하늘에다(2015). 도판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팥배나무(2013). 도판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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