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에 나온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상청앵’. 화면 상단의 절반 가까이를 허공으로 비워놓아 선비의 회한 어린 시선과 속내가 더욱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판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18~19세기 불세출의 화가 김홍도의 걸작 ‘마상청앵’은 옛 청춘에 얽힌 회한이 뭉클하게 잡히는 그림이다. 늦봄 동자와 함께 나들이를 나선 초로의 선비는 버드나무 위에서 발랄하게 뛰노는 꾀꼬리 한쌍을 고개 들어 묵묵히 바라본다. 세필로 그린 담담한 선비의 표정에 젊을 적 활력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먹 번짐과 깔깔한 필선 속에서 은근히 와닿는 그의 울적한 심사야말로 새 봄이 왔으나 이전의 봄이 아니라는 ‘춘래불사춘’의 정조일 터다.
‘마상청앵’처럼 간송미술관의 명품들에게 봄은 왕년의 봄이 아니다. 지금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디디피) 전시장에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잇따라 마련해온 ‘간송문화전’의 여섯번째 전시회인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가 열리고 있다. 재단이 디디피에서 소장 회화, 도자 명품 등을 차려 엮는 마지막 전시다. 2014년 봄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그림과 조각 도자 명품들이 디디피로 옮겨 기획전을 연지 2년을 넘겼지만, 관객이 별로 없고 여전히 침침한 전시장은 파장 같은 분위기다.
전시장엔 15세기 안견의 제자 석경부터 이정, 김명국, 윤두서, 심사정,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김양기, 이한철, 유숙, 조석진, 장승업 같은 조선 중후기의 기라성 같은 대가들과 20세기 초의 조석진과 안중식, 고희동에 이르기까지 조선대표 화가들의 인물화, 풍속화 80여점이 내걸렸다. 일상, 꿈, 풍류 세가지 주제 아래 다양한 인물화, 풍속화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성북동 간송미술관 시절 숱하게 선보였던 전시틀을 답습한 것에 가깝다. 진열장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고, 특수조명이 구비되지 않는 등의 한계가 개선되지 않아 관람의 밀도감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출품작들이 각기 계절과 이상향, 시대의 흥취를 담고 옛 사람들의 꿈과 일상의 이야기들을 버무려 펼친 명작, 수작들이란 점이 시선을 다잡게 한다. 병아리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뒤쫓는 뜨락의 암탉과 촌 부부의 모습을 담은 김득신의 ‘야묘도추’나 양떼와 단소를 부는 소년을 사실적인 필력과 목가적 정취로 그린 이인문의 ‘목양취소’, 저 유명한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과 미인도 등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들이다. 비디오아티스트인 이이남 작가가 단원의 ‘마상청앵’의 배경을 별밤으로 옮겨놓은 비디오영상물을 내놓았고, 구범석 작가가 풍속인물화 걸작 10점을 초고해상도 화질의 영상에 정밀 재현한 작업들도 같이 나왔다.
동선의 얼개나 전시장 환경이 거의 달라지지 않은 전시는 간송재단 쪽과 전시장소를 빌려준 서울디자인재단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기류 또한 반영하고 있다. 간송재단 쪽은 서울디자인재단이 2년간 관리인력 제공 외엔 전시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을 거의 하지 않은데 내심 불만이 적지않았다는 후문이다. 올해 하반기 백남준-간송컬렉션의 합동기획전을 끝으로 간송 전시는 다른 장소로 옮겨간다. 간송재단 쪽은 좀더 양질의 전시공간을 암중모색 중이라고 한다. 진경산수로 대표되는 간송연구자들 특유의 학구적인 기획 역량과 성북동 시절의 공간적 권위를 얼마나 되살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인파로 들끓었던 성북동 시절이 그립다는 이들이 많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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