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포펜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2년 14살의 클라라 주미 강(28)은 독일 베를린국립음대에 입학해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60)의 제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 포펜에게서 갑작스런 소식이 날아왔다. 새 학기부터 뮌헨국립음대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는 것이었다. 몹시 실망한 클라라 주미 강은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 꼭 뮌헨에 가서 배우겠다”는 다짐을 써서 포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고는 한 학기 뒤 한국으로 와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 된 것은 이 엇갈림 이후 9년이 흐른 2011년 뮌헨국립음대에서였다. 클라라 주미 강은 오랜 갈증을 해소하듯 포펜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제가 평생 배우고 싶어할 것의 절반 이상을 5년간 포펜 선생님께 배웠어요. 독일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비롯해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던 작품들을 신나게 알아갔죠. 그 과정에서 결국은 모든 음악이 실내악이라는 중요한 깨달음도 얻었고요. 특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실내악적으로 접근한 선생님의 지도 방식은 무대에 설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도 새로운 협주곡을 연주할 때면 악보를 들고 포펜 선생님을 찾아가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뿐 아니라 지휘자 입장에서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죠.”
지난 2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스승인 포펜에 대해 강한 신뢰와 존경을 드러냈다. 오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포펜이 지휘하는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스승과 나란히 무대에 서는 데 대한 기대도 커 보였다.
함께 자리한 스승 포펜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라라는 이 시대가 원하는 다재다능한 연주자예요. 바흐에서부터 모차르트, 비발디, 브람스, 차이콥스키, 파가니니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전부 환상적으로 소화해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콩쿠르에 입상하며 실력을 발휘해오긴 했지만, 지난 5년간은 특히나 눈에 띄게 발전했어요.” 그는 “둘 다 음악을 대할 때 몹시 진지하고 치열해 협연할 때면 1초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며 “앞으로 많은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리라 기대된다”고 밝혔다.
포펜이 이끄는 ‘독일 최고(最古)의 실내관현악단’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이날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으로 시작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모차르트 교향곡 29번에 이르는 꽉 찬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할 두 협주곡 중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은 놀랍게도 1996년 4월30일 8살의 나이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데뷔했을 때 연주했던 곡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정확히 20년 만에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게 된 것은 믿기지 않는 우연”이라며 “예술의전당 관계자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20년 전 공연 기록을 찾아본 뒤 소스라치게 놀랐다. 개인적으로 더욱 뜻깊은 연주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제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던 스승은 자리를 뜨기 전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주자에게 유일한 적은 ‘일상성’입니다. 프로 연주자들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주하게 되기 때문에 특정한 패턴에 고착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저 또한 익숙한 작품을 대할 때도 처음 대하는 것처럼 새롭게 바라보려 하고, 모든 연주를 그 작품의 세계 초연처럼 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악은 하늘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무대 위에서 놀랄 만큼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클라라가 언제나 이 점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김소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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