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 작가의 연 사진 근작.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주명덕 작가의 연 사진 근작.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깊고 시커먼 화면 속에 연(蓮)의 생태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흙탕물 연못 속에 뿌리박고 사력을 다해 줄기와 꽃을 피워 올린 뒤 사그라지는 특별한 식물. 그이가 살면서 남긴 자취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원로 사진가 주명덕(76)씨가 근작으로 내보인 연 사진들은 어디서든 비집고 삶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엄숙한 힘을 이야기한다. 23일부터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연(蓮) PADMA’에는 불교와 전통문화의 상징인 연의 생태를 나라 안 곳곳을 돌며 집요하게 포착한 풍경들이 모여 있다. 작가가 가장 자주 들렀다는 충남 부여의 백제 연못 궁남지를 비롯해, 울진 불영사, 지리산 등 각지 연못에서 수면과 어울린 연잎, 연줄기, 연꽃의 다양한 모습을 클로즈업한 흑백사진 70여점이다. 1980년대 말 ‘검은 사진’으로 불리는 짙은 블랙톤 연작으로 사진계를 풍미한 작가는 예의 검은 톤 화면에 볼수록 심오해지는 연의 자태를 이모저모 심어놓았다. 불교의 대표적 이미지인 연꽃 봉오리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수면에서 꺼글꺼글한 글자 자국들처럼 얽힌 연줄기나 올챙이 머리처럼 떼로 떠 있는 고만고만한 연잎들, 제 삶을 다하고 부스러지거나 시들어가는 늙은 연잎 등이 선연히 눈에 들어온다. 암실에서 현상액을 손에 묻혀가며 일일이 사진을 인화한 작업은 노작가가 자신만의 또다른 연꽃과 연잎을 피워내는 과정일 것이다.
주 작가는 다분히 프랑스 인상파의 대가 클로드 모네(1840~1926)를 의식하며 연을 찍었다고 고백한다. 말년의 모네가 지베르니 연못에서 자기만의 눈길로 수련들을 해체해 추상의 화폭으로 내달았던 것처럼, 그 또한 오직 자기의 감흥과 시선에 의지해 연의 구석구석을 파헤쳐보았다고 했다. 1966년 홀트씨고아원을 다룬 사회적 다큐사진들로 떠들썩한 데뷔전을 치른 이래 40여년간 자연과 사람, 절집, 산야와 생명으로 시야를 넓혀온 작가는 지금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있다. 그는 “1월 오래 간병하던 부인이 세상을 등진 뒤로 자연을 보는 시선이 왠지 더욱 넓고 편안해졌다”면서 웃었다. 6월18일까지. (02)418-131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