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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권력에 짓밟히는 산골마을 흡사 한국사회 축소판이네!

등록 2016-05-03 20:24수정 2016-05-03 20:24

연극 ‘다목리 미상번지’
연극 ‘다목리 미상번지’
리뷰 l 연극 ‘다목리 미상번지’

빚 못갚으면 재산 강제매각하고
항의 주민들은 공권력으로 제압
삼청교육대 등 역사장면 등장도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

군 정보기관이 숟가락 숫자까지 알 정도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언론은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금융기관은 대출금을 강제환수해 서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이에 항의하면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진압한다.

여기는 1980년 강원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군부대로 둘러싸인 이 산골 마을은 대부분 번지가 불분명한 미상(未詳)이다. ‘여기’는 개인정보 수집, 여론 통제, 시위 강제진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를 닮았다. 그러므로 ‘여기’는 바로 ‘지금 여기’ 한국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연극 <다목리 미상번지>를 쓴 김진만 연출은“나는 다목리 출신으로 유년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은유했다”고 설명했다.

얼개는 두 갈래다. 저축상을 타려는 초등학교 6학년 봉만이를 따라가는 한 갈래, 또 새로운 권력자인 마을금고 이사장을 따라가는 한 갈래.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살던 다목리엔 마을금고가 있다. 주민 대부분은 이 금고에 빚을 졌다. 마을금고에선 1년에 한 번씩 저축상을 준다. 봉만이는 저축상을 받으려 빈병도 줍고 더덕도 캐 꼬박꼬박 금고 창구를 찾는다.

그러던 중 다목리에 권력의 손길이 들이닥친다. 보안대 주임상사 출신 ‘대머리’가 마을금고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는 1980년 군복을 벗고 최고권력자가 된 인물과 오버랩된다. ‘권력의 마름’ 이장은 안테나를 조정해 방송채널이 하나만 나오도록 통제한다. 이사장은 빚을 못 갚는 주민의 돼지와 배추밭을 강제로 매각하고, 항의하는 주민을 공권력으로 짓밟는다. 1980년 광주, 삼청교육대 등 역사적 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여기서 ‘특수장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드럼통을 바퀴처럼 연결한 수동식 컨베이어 벨트다. 봉만이와 주민들이 그 위를 지날 때 다른 배우들이 밧줄을 당겨 컨베이어를 돌린다. 주민들이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극복과 협력의 상징이다. 컨베이어 벨트는 시공간을 이동시킨다. 1980년 다목리의 주제를 2016년 한국사회로 옮겨놓는다.

연극은 다소 투박하다. 봉만이의 저축왕 분투기는 단순하고, 마을의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쉽게 파악이 된다.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하지만, 이미 수십 년을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온 소재로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연기나 무대도 그리 세련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민간극단 ‘앙상블’이 504석의 극장에서 60명이 출연시키는 대형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국립극단 등 국공립 극장, 대형 민간극장들과 달리 민간극단들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콘텐츠 소형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16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이다. 오는 7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706-0846.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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