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조기숙 교수의 ‘뉴발레단’
여신시리즈 3부 ‘무산신녀’ 공연
“이르면 내년 완결판 올릴 예정”
여신시리즈 3부 ‘무산신녀’ 공연
“이르면 내년 완결판 올릴 예정”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춤꾼 조기숙(57)은 ‘거리’에 있었다. 발레를 전공한 그는 1986년 민중문화운동연합 ‘춤패 불림’을 창단했다.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그린 ‘고문 춤’, ‘반전반핵 춤’, ‘반우루과이라운드 춤’ 등 100차례 이상 춤판을 벌였다. 흙바람 부는 시위 현장에서 10여 년을 몸을 굴리고 발을 굴렀다. “그때는 운동을 잘하자는 목표로 춤을 췄어요. 예술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조기숙은 1994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처음으로 개인 발레콘서트를 열었다. 이후 영국 서리대로 유학을 떠나 무용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2004년 무용비평 강의를 하러 귀국한 뒤 모교인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임용됐다.
누구보다 뜨거운 80~90년대를 살아온 그는 2005년 ‘조기숙 뉴(NEW)발레단’을 창단했다. 지난 29일 서울 신촌 교정에서 만난 조기숙은 “뉴발레는 기술이 아니라 개념적인 것입니다. 모던과 컨템퍼러리를 포함한 혁신적이고 새로운 발레지요”라고 설명했다. 엄격한 규칙과 동화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성을 표현하자는 것이다.
조기숙 뉴발레단의 신작 여신시리즈 3 <그녀가 운다-여신 무산신녀>가 오는 13일과 14일 이화여대 삼성홀 무대에 오른다. ‘여신’을 열쇳말 삼아 동양신화의 권위자 정재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가 대본을 쓰고 조기숙 교수가 안무를 맡았다. 2013년 여신시리즈 첫 번째로 <그녀가 온다-여신 서왕모>, 2014년 <그녀가 논다-여신 항아>에 이은 세번째 작품이다.
조기숙은 “서양의 비너스처럼 동양신화에도 여신이 많아요. 여신을 표현하는데에 발레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발레는 여성이 주체가 돼 미적인 창작품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표현과 움직임을 통해 삶에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무산에 사는 여신 무산신녀는 삶과 사랑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진취적인 여신이다.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 초나라 회왕을 유혹하고 하룻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맺은 후 안개처럼 사라진 그가 남긴 말이다. 조기숙이 보기에, 이런 여신은 21세기 여성의 모습과 가장 닮았다.
“무산신녀의 특징은 ‘뜨겁게 사랑하고 미련없이 떠난다’는 겁니다. 남자에게 애걸복걸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주도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존재지요.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여성이 자기 삶과 사랑의 주체, 주인이 돼 살라’라는 것입니다.”
주제보다 표현방식도 더 고민이었다. “서양에 기원을 둔 발레지만 동양적인 특수성을 어떻게 안무에 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수직을 지탱하는 중심선을 내부에서 정확하게 잡아주면서도, 드러나는 동작은 유연하게 부드럽게 표현합니다. 단원과도 함께 수련하는 개념으로 대합니다. 수련은 획일적으로 맞추는 게 아니라 조화이죠. 수련을 통해 개성과 조화를 이뤄내 ‘하늘의 별’처럼 각자 자유롭게 살자는 겁니다.”
이번 <그녀가 운다-여신 무산신녀>에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조정희가 출연하며, 발레컬 등 대중적인 발레창작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와이즈발레단의 남성무용수들이 객원으로 가세한다. 조기숙은 “이르면 내년에는 여신시리즈 완결판 <그녀가 난다-여신 여와>를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02)2263-4680.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조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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