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형석 기자
류인 미공개 조각 전시회
99년 요절한 청동군상 조각가
생의 마지막엔 흙·나무에 깊은 관심
99년 요절한 청동군상 조각가
생의 마지막엔 흙·나무에 깊은 관심
흙으로 빚은 청년의 몸뚱어리는 점점 나무뿌리로 변하고 있다. 허공에 누운 채 매달린 그의 왼손에서 나뭇가지가 벋어오르고 비감한 청년의 눈길은 이미 나무뿌리가 된 하반신을 줄곧 바라본다. ‘나무인간’이 된 청년, 아니 그 청년상을 빚어낸 병든 작가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90년대 격렬한 몸짓을 담은 청동군상 연작들로 이 나라 조각가들의 우상이 됐던 류인(1956~1999)의 마지막 작품은 뜻밖에도 자연 회귀의 비장한 소망을 드러낸다. 그가 타계 직전 만든 최후의 작품이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유작전 ‘경계와 사이’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나왔다. 간경화 등으로 99년1월11일 절명하기 직전까지 서울 대신동 작업실에서 작업하다 미완에 머문 채 보관되어온 제목 미상의 작품이다. 고인의 제자 김송필 작가가 원래 흙으로 빚어진 상반신상을 특수수지로 대체하고 하반신 나무뿌리는 보존처리해 전시장에 내놓았다. 김씨는 “흙을 자기 조각의 원형질로 중시했던 고인의 마음이 솔직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라며 “세간에 알려진 거칠고 강한 청동인물 군상과는 다른 맥락인데다 미완성작이어서 작업실에 보관만 해오다 말년작들을 다룬 이번 전시에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대로 전시는 흙, 나무 같은 자연 질료의 심층을 탐구해 간 고인의 말년 작업들을 주로 조명한다. 그동안 류인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 사물에 짓눌리거나 파묻혀 버둥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몸부림을 극적인 구도로 형상화한 작가로 알려졌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삶과 죽음, 문명과 자연 등의 사이 공간을 파고들며 금속조각의 경직성을 벗어나 유연한 조각적 원형질로 회귀하려 한 작가 만년의 조형적 시도들을 느낄 수 있다. “흙은 작업의 시작이자 끝” “흙은 자유이자 내 삶의 돌파구”라는 생전 작업노트의 내용들이 그 유력한 근거로서 함께 공개돼 감상을 돕는다. 인간의 형상 대신 나무등걸들을 철판에 붙여 늘어뜨린 제목 미상의 95년 작품과, 목을 감아쥔 주먹 위로 고뇌하는 표정의 길쭉하고 창백한 얼굴을 놓은 86년 작 <사인>(死因)은 최후작과 더불어 처음 공개되는 것들로서 생전 작가의 글과 조응되는 작품들이다. 실존과 현실에 대한 조형적 투쟁을 넘어 조각의 모태인 흙의 정직한 속성에 대해 지난한 탐구를 거듭했던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전시다. 6월26일까지. (02)541-5701.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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