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운영위-기존 진흥회 갈등 내세워
공식기구 해산시키고 포기 선언
진흥회 회장은 선거 지지연설 인물
비대위, 연극제 포기 철회 촉구
“군민의 예술향유권 왜 강탈하나”
공식기구 해산시키고 포기 선언
진흥회 회장은 선거 지지연설 인물
비대위, 연극제 포기 철회 촉구
“군민의 예술향유권 왜 강탈하나”
27년을 쌓아온 연극도시 거창의 명성이 무너질 위기에 빠졌다. ‘지역권력’ 군수가 바뀌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문화상품 거창국제연극제 개최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거창군은 지난 9일 “제28회 거창국제연극제 개최를 포기하고 군이 연극제를 위해 설립한 운영위원회를 해산한다”고 선언했다. 군이 내세운 이유는 “(그동안 연극제를 주최해온 기존 단체인)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에서 거창국제연극제 개최 방침을 통보해 옴에 따라 2개의 연극제가 개최되는 상황”이라며 “득보다는 실이 많아 부득이 개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거창연극제는 1989년부터 진흥회 주최로 열려왔다. 하지만 지난해 문화부로부터 “연극제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공연예술축제에 걸맞은 예술감독, 프로그래머 등 전문인력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거창군은 연극 관련 외부 전문가들로 새로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손정우 연출가가 위원장을 맡고, 박재완·김성노 연출가, 김창화 상명대 연극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심재민, 문종근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양동인 신임 군수가 부임한 뒤 기존 주관단체인 진흥회 쪽 인사를 포함시켜 운영위를 새로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운영위 쪽이 이를 거부하자, 결국 거창군은 연극제 포기를 선언했다.
양 군수는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진흥회 쪽이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을 지니고 있어, 연극제를 올리려면 군에서 설립한 공식기구인 운영위와 진흥회가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 협상이 무산돼 어쩔 수 없이 포기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영위 쪽에서는 그동안 새로 운영위를 만들며 연극제의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던 군 쪽이 갑자기 진흥회 입장을 대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진흥회 회장인 이종일씨는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양동인 군수의 선거운동 출범식 때 지지연설을 한 인물이다. 운영위원회는 지난 3일 “이씨는 2013년 공금횡령사건으로 대법원에서 5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경남예술진흥원 보조금 운용지침은 형을 확정받은 자가 단체대표, 연출 및 스태프로 이름만 올려도 도비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다고 돼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운영위원회 쪽 인사들은 연극계를 망라한 비상대책위를 꾸려 해산 철회를 촉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회견을 열어 “(연극제 예산으로) 이미 확보한 공적 지원금 8억2천만원(국비 3억원, 도비 2억원, 군비 3억2천만원)을 잃게 됐을 뿐 아니라 거창군민의 여름예술 향유권 또한 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5개 해외초청 결정단체들과의 국제분쟁, 4개 국내 초청단체들의 법적 배상문제도 거창군은 결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해마다 8월 거창 일대에서 열리며 성장을 거듭해 한 때 문화체육관광부 유망 축제에도 뽑힌 바 있다. 오세곤 순천향대 교수는 “(집행위원장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해임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진 일이 또 발생했다. 지원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깨졌다”고 말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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