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쿠거>의 지난해 초연 장면. 중년 여성들의 성과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지만, 올해 공연은 취소됐다. 사진 쇼플레이 제공
‘쿠거’ ‘비틀스 더 세션’ 잇따라 무산
대형 공연이 매출액 끌어올렸지만
“다양한 작품 설자리 좁아져” 우려
대형 공연이 매출액 끌어올렸지만
“다양한 작품 설자리 좁아져” 우려
“예매창 보니 한 장도 안 나간 날도 있더니만 결국 취소됐네.” “초연 진짜 재밌었는데….” “시작 전에 미리 잘 팔리는 공연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연극·뮤지컬 게시판’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지난해에 이어 재연 예정이던 뮤지컬 <쿠거>가 18일 공연을 앞두고 지난 9일 갑작스레 취소된 데 대한 반응이다. <쿠거>는 중년 여성들의 성과 욕망을 ‘19금 대사’로 솔직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초연 당시, 이야기 힘 하나로 입소문을 타 흥행 뒷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제작사 쇼플레이 쪽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내부적인 상황 때문이다. 작품을 더 잘 올릴 수 있을 때 올리겠다”라고만 밝혔다.
소리 소문 없이 취소된 공연은 또 있다. 6월3~19일 내한공연이 예정됐던 뮤지컬 <비틀스 더 세션>은 5월 초 최종적으로 공연이 무산됐다. 영국 답사까지 다녀오며 공연 추진에 박차를 가했던 제작사 스페셜원컴퍼니는 “국내외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간단히 이유를 밝혔다. <비틀스 더 세션>은 공연 한 달을 앞두고도 예매가 시작되지 않아 예매 사이트에 문의 글이 달리기도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지난해 뮤지컬 시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2009년 이후 6년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예매ㆍ공연 취소가 잇따랐고 그나마 하반기 정부의 ‘공연티켓 1+1 지원 사업’으로 한숨을 돌렸다. 올 상반기 두 편의 잇단 취소는 뮤지컬 시장에 다시 울리는 ‘경고음’인 걸까.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김선경 홍보팀장은 “작년 상반기에 비하면 뮤지컬 전체 판매 추이는 나쁘지 않다. 금액으로 따지면 더 낫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레베카> <맘마미아> <헤드윅: 뉴메이크업>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회전문 관객’을 모으고 초연 중인 창작뮤지컬 <마타하리>가 인기를 얻은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장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지만 입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쿠거>처럼 40대 여성 관객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며 시장다양성에 기여하는 작품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도 제이와이제이(JYJ) 김준수가 출연한 <데스노트>는 전석이 매진됐다. 정부 ‘1+1 지원’도 <엘리자벳>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스타들이 출연하는 대작들만 잘되는 쏠림 현상이 잇단 공연 취소의 배경이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 대목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행한 <2015 뮤지컬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라이선스 뮤지컬의 시장점유율 확대, 스타 캐스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다양성과 실험성의 부족을 국내 뮤지컬의 약점과 위기로 꼽았다. 커진 덩치에 비해 내실은 키우지 못한 국내 뮤지컬 시장의 한계가 두 뮤지컬의 잇단 취소를 그냥 넘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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