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사진 SMG 제공
리뷰 l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천재 작가의 불우한 인생 다루지만
그의 내면보단 일대기 담는 데 급급
천재 작가의 불우한 인생 다루지만
그의 내면보단 일대기 담는 데 급급
지난달 31일 개막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이하 에드거·연출 노우성)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삶을 그린다.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내의 이른 죽음 뒤 알코올, 약물 중독으로 방황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가난 역시 그를 괴롭혔는데 결핵으로 죽은 아내 버지니아가 장례식 때 덮고 있던 것은 그의 낡은 외투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에드거>는 150분간 오직 포에 대해 노래하고 말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버지니아의 죽음을 그린 장면을 보자. 무대는 아내의 관을 붙잡고 슬퍼하는 포를 잠시 보여준 뒤 다음 장면으로 급전환한다. 장면 전후로 감정선은 뚝뚝 끊기고, 관객들은 포의 내면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는지 추측밖에 할 수 없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전기 쓰듯 많은 내용을 담는 데 급급한 느낌이다.
포의 정적으로 설정된 ‘그리스월드’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듯한 연출도 문제다. 관객들은 포가 왜 갑자기 돈에 집착하는지, 아내가 아픈 와중에도 술을 마셔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작품은 대신 그리스월드의 질투심과 분노를 그리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포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도, 왜 그렇게 불행했는지도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채 극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다만 ‘모르그 가의 살인’ 등 포의 작품을 노래로 풀어낸 넘버들은 활자를 활용한 영상과 어우러지며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에드거>를 보면 앞서 막을 올린 뮤지컬 <마타하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둘 다 실존인물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무대 위로 옮겨진 뒤 현실보다 밋밋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부실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그저 비극적 운명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리는 불행한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타하리>에서 ‘이중간첩’이라는 소재와 그에 걸맞은 능동적 캐릭터 설정은 사랑에 목매는 여인을 그리느라 뒷전으로 밀렸다.
<마타하리>는 올해 첫선을 보인 창작 뮤지컬이고 <에드거>는 2009년 독일에서 초연된 라이선스 작품이다. 두 작품의 동일한 오류는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한 인물의 삶을 무대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집중과 선택을 통해 정교한 이야기 구조를 쌓아야 했지만 둘 다 이를 놓쳐버린 듯하다. <에드거> 7월24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02)1577-3363.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