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강미선이 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30돌 공연
수석무용수 강미선이 심청 역할
러시아 출신 남편과도 ‘2인무’
“발레에 한국적 정서 ‘효’ 담았죠”
수석무용수 강미선이 심청 역할
러시아 출신 남편과도 ‘2인무’
“발레에 한국적 정서 ‘효’ 담았죠”
달빛 아래 잠 못 드는 궁궐의 밤, 사랑을 약속하는 ‘문라이트 파드되’ 5분. 심청과 왕의 춤은 얼싸안고 돌고 돌아 달처럼 둥글어지고, 달을 안을 듯 전각 위 허공으로 솟구친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3막의 2인무로, 갈라콘서트 단골 메뉴다.
“연꽃에서 나온 심청을 보고 왕은 한눈에 반하고, 두 사람은 세레나데 같은 선율에 맞춰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마주합니다. 부끄러워 멀리했다 다시 다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춤이에요. 설렘과 부끄러움을 넘어 행복한 느낌을 표현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33)은 오는 10일 <심청> 30돌 기념공연에서 심청 역으로 개막 무대를 장식한다. <심청>은 가장 서양적인 춤인 발레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 ‘효’를 담아냈다. 심 봉사 가족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서민문화와 왕으로 상징되는 궁중문화까지 우리 전통문화를 한데 아울렀다. 2011년부터 13개국 40여곳에서 선보인 ‘발레 한류’의 대표작이다.
“어릴 때부터 접했던 익숙한 이야기인데다 ‘효’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백조의 호수>나 <돈키호테>처럼 화려하거나 어려운 테크닉은 적지만 1~3막을 심청이 모두 이끌어야 하니까,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해요.”
지난 3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강미선은 표정과 동작으로 ‘효’를 표현해 보였다. 간절한 눈빛을 한 채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더듬더듬 무엇을 찾는 듯했다. 앞을 보지 못함을 뜻하는 동작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심청의 그리움을 표현한다. 그러다 위쪽을 가리켰다. 용왕에게 ‘저 물 밖 인간세상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말한 것이다.
200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강미선은 테크닉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무용수다. 특히 드라마 발레 <오네긴>에서 보여준 내면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15년차’로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됐다. “어린 친구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나도 군무할 때 대여섯 역을 함께 하느라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그렇게 다독이지요.”
그는 2014년 러시아 출신으로 같은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1)와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둘 다 완벽주의자라 작품을 두고 티격태격 싸우지만 곧 화해한다”는 이들은 당시 “세월호 사건으로 소박한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강미선은 남편 코스챠(콘스탄틴의 애칭)와 2막에서 ‘심청과 용왕의 2인무’를 펼친다.
관객이 첫손에 꼽은 <심청>의 명장면은 선원들의 군무다. 영상으로 비친 바다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처럼 천파만파로 일렁이며 거친 숨을 토해낸다. 고전발레풍의 웅장하고 점층적인 오케스트레이션에 맞춰, 선원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당수에서 역동적 춤을 펼쳐 단박에 객석을 휘어잡는다. 이어 또 하나의 명장면 심청의 수직낙하.
“뱃머리에 올라가면 높이가 3m라 리허설 때 주저주저하다 뛰어내렸습니다. 따로 낙하 연습을 해야 했고요. 엄청 무서웠고 매트리스로 낙하할 때도 가슴이 방망이질 쳤어요.”
문훈숙 단장이 이야기를 보탰다. 1986년 초연 때 안전장치가 허술해, 당시 심청 역을 맡은 문훈숙 등이 뛰어내리기를 주저했다 한다. “아버지(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가 오셔서 상황을 듣고 ‘내가 뛰어보겠다’ 하셨어요. 정장에 구두 차림으로 뛰어내리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안경테가 부러지셨어요. 그제야 스태프들이 사색이 돼 보호망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안전하다.
1대 예술감독인 에이드리언 델러스가 안무, 케빈 바버 피커드가 작곡을 맡았으며, 최근 작고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가 대본을 썼다. 최승한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오는 10~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