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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잇단 ‘작가 몰래’ 연극…저작권 개념 없는 연극판

등록 2016-06-13 16:25수정 2016-06-14 17:08

대학로 대표하는 젊은 작가 오세혁
“작가 동의도 없는 공연 말이 됩니까”
임은정·김규남 작가 등도 같은 피해
사전동의 의무화 등 제도개선 요구
오세혁 작가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에서 침해받는 작가의 저작권 문제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오세혁 작가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에서 침해받는 작가의 저작권 문제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대본이 있어야 연극을 올리잖아요? 그러면 작가한테 동의를 받고 올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공연하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화나는 것은 항상 맨 뒤로 밀리는 게 작가라는 거죠.”

지난 8일 서울 대학로에서 <한겨레>와 만난 오세혁 작가는 평소 그답지 않게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는 지난달 대구의 극단 ‘처용’이 자신의 희곡 <지상 최후의 농담>을 작가 동의 없이 공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구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은 공연임에도, 사전에 작가에게 알리지 않았고 당연히 작가료 협의도 없었다. 그는 사회관계통신망(SNS)에 “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은 극단 걸판이 가지고 있으며, 저 또한 걸판의 동의 없이는 어떤 작품도 올리지 못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작가 동의 없는 공연’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

오 작가는 최근 막을 내린 <보도지침> 대본과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 각색을 맡는 등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극단 걸판을 이끌고 있으며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로 저작권 권익도 담당하고 있다.

안산에 기반을 둔 오 작가는 지역 극단들의 열악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잘못된 관행’과 정면대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 이런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제주도의 한 극단은 오 작가의 작품을 자기들 창작물인 것처럼 꾸며 공연하려다 들통나기도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희곡 훔치기’가 전국에 만연했다는 점이다. 대구의 극단 ‘고도’는 지난달 임은정 작가의 희곡 <기막힌 동거> 공연을 준비하면서 개막 사흘 전에야 작가에게 연락해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극단은 김규남 작가의 희곡 <용을 잡는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작가 동의 없이 2016년 대구문화재단 지원사업으로 신청해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대구문화재단의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것으로 올해부터 작가에게 저작권이 귀속됐다. 김 작가는 극단과 재단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은 되레 페이스북에 극단명과 배우 얼굴이 공개된 데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작가는 “제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임은정, 김규남 두 작가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극단들이) 작가들의 명예나 권리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명예는 지키겠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오 작가는 “문제는 세 가지”라고 요약했다. “작가 동의 없이 지원금을 받은 부분, 지원금을 받고도 2~3년 또는 3~4개월 지나도록 작가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부분, 그리고 그럼에도 재단에서 극단에 지원금을 줬다는 부분. 우리는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희곡 훔치기’는 해묵은 골칫거리다. 고연옥 작가는 13일 “예전에 제 동의 없이 연극이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한국희곡작가협회를 통해 극단에 작가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했습니다. 저작권법에는 작가 동의가 없으면 공연 중지를 요구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어려운 극단 사정을 봐주자는 입장이 많았습니다”라고 연극계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를 풀려면, 지원사업 선정 때 ‘작가 동의서 의무제출’ 등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지역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연 단체로부터 지원사업을 신청받을 때 사업계획서에 작가료 지급 증빙서류를 요구하지만, 내지 않더라도 강제조처를 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연극인 최창우씨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이제라도 지원사업 신청시 작가 동의서를 필히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과 공연 횟수, 극장 객석 수를 고려한 객관성 있는 저작권료 책정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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