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설경구 주연 ‘러브레터’ 배우도 관객도 눈물 흘리다

등록 2005-10-27 17:33수정 2005-10-27 17:33

죽음 앞두고서야 사랑의 감정 확인한 두 남녀 배우도 관객도 눈물 흘리다 설경구 주연 ‘러브레터’
죽음 앞두고서야 사랑의 감정 확인한 두 남녀 배우도 관객도 눈물 흘리다 설경구 주연 ‘러브레터’
죽음 앞두고서야 사랑의 감정 확인한 두 남녀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전 그녀를 사랑했던 겁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겁니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것 같지가 않아요. 다시 그럴 것 같지도 않고요.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던 겁니다.… 이 말은 부인과 그녀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앤디 래드로부터.

앤디의 마지막 편지 대사가 끝나고 무대에 암전이 깔렸다.

무대와 객석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작은 훌쩍거림과 소리죽인 오열이 들려왔다. 이윽고 막이 다시 오르자 뜨거운 박수소리와 함께 두 배우가 등장했다. 눈가에 채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이 밝은 조명에 빛났다.

지난 25일 밤 연극 <러브레터>(연출 최형인)가 무대에 오른 대학로 한양레퍼토리극장 안은 가슴을 저리는 아픔과 따뜻한 감동의 열기로 가득찼다.

이 날은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초창기 멤버였던 영화배우 설경구(37)씨가 9년만에 다시 연극판에 서는 복귀무대였다. 125석의 소극장은 주로 설경구 팬들로 보이는 여성 관객들로 점령돼 객석 통로에는 보조의자 25개가 동원되었다.

미국 극작계의 거목 앨버트 램스델 거니(1930~)가 1989년에 발표한 <러브레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앤디와 멜리사가 10대부터 50대까지 평생 주고 받은 편지를 대사처럼 번갈아 읽는 형식의 연극이다.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눠왔던 두 남녀가 멜리사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서로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담백하고 유쾌하며 가슴 저린 대사로 펼쳐진다.

멜리사: 50년이란 세월이 지난밤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어요./ 앤디: 100년이란 세월도 가라고 해요./ 멜리사: 난 지금 아무런 생각도 않나요, 단지 당신을 어떻게 만나느냐 밖에는./ 앤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어떻게 급격히 바꿀 수 있을지....../ 멜리사: 당신은 내 삶의 중심지가 되어 왔어요. 당신이 날 떠난다면, 나도 살 것 같지가…


서로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설경구씨와 김보영씨의 눈가에 물기가 번지기 무섭게 눈물방울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20여분간 쏟아지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면서 목멘 대사를 힘들게 뱉어냈다. 객석에서 오열이 터져나왔다.

“주책을 부린 거죠. 배우마다 감정의 정도가 다르지만 저는 본래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앤디와 멜리샤 역에 빠지다 보니까 저와 김보영씨 둘 다 그냥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설경구씨는 “나중에 앤디가 멜리사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절감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앤디는 어렸을 때부터 밸런스(극중 대사는 균형감각)를 쭈욱 유지해왔지만 멜리사는 계속 밸런스를 놓치고 나중에는 스스로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것을 보니 가슴이 몹시 아팠다. 연극 중반부터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말했다.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때도 철수 역을 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는 그는 “연습할 때는 대사를 못 칠 정도로 통곡을 했다. 그런데도 계속 대사를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밝혔다.

“경구는 본래 눈물이 많아요. 심성이 고와서 어린애 같습니다. 연습을 할 때 대본을 읽다말고 10분 이상 통곡을 하기도 해요. 첫날 무대에 나가기 전에 ‘울음이 터져나오더라도 소리내지 마라’ ‘울더라도 대본만은 쳐야 한다’고 당부할 정도였어요.” 그의 스승인 연출가 최형인 한양대 교수는 “이번 작품이 3번째 무대에 오르지만 대본이 워낙 뛰어나 울지 않는 배우가 없었다. 그렇지만 경구가 유독 심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설경구씨는 “<러브레터>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머리 속이 펑 뚫려버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라”면서 “요즘 사람들은 눈물이 없는 것 같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한다. 그렇게 살면 재미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설경구씨는 오는 11월6일과 12~13일에는 임유영씨와 다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호재-지자혜, 최용민-정경순, 이대영-최형인, 김경식-김보영 커플의 열연도 기대된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한양레퍼토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