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려는 생각을 싹 버린 마음으로 쓰라는 것이다. 거기 생각은 하나도 없고 다만 정성만이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바로 붓을 꺾어야 해.”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나 홍지민(28)은 뜻밖에 무위당 장일순(1928~94)의 글귀를 인용했다. 14살 때 캐나다로 춤 공부를 떠나 캐나다 국립발레단을 거쳐 덴마크 왕립발레단에서 활동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다. “‘정성만이 있는 상태’는 어떤 사심도 없는 상태죠. 비워진 마음으로 춤을 추려면 연습실·무대뿐 아니라 평소 어떤 생각과 말을 하는지 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현재’에 온전히 마음을 둘 수 있고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는 춤을 출 수 있죠.”
홍지민은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캐나다 국립발레학교로 유학해 그곳에서 멘토인 소렐라 엥글룬드를 만난다. 그에게 덴마크 왕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인 <라실피드> <오네긴> <지젤>을 배운다. 홍지민은 예원학교 교내 축제 이후 14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 초청받은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머무는 그를 13일 전화로 만났다.
홍지민은 10대 후반부터 4년 동안의 부상을 이겨내고 다시 춤판에 섰다. “캐나다 국립발레단 캐런 케인 예술감독께서 학교 때 제 춤의 가능성을 기억하시고, 저를 오디션 없이 연수단원으로 뽑아주셨어요. 지금 제가 춤추는 게 기적입니다.”
그래서인지 홍지민은 김기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서희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박세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 강효정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자랑스럽다”고 했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외국의 직업무용단에서 주역 무용수, 솔리스트 등으로 활약중인 스타급 한국인 무용수들을 엄선해 올리는 갈라 공연이다. 올해 초청된 해외 무용수는 홍지민을 비롯해 박윤수(독일 함부르크발레단), 김민정(헝가리 국립발레단), 나대한(캐나다 국립발레단), 정훈목(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이다. 이들은 파트너 무용수들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유명 안무가의 작품과 고전을 공연한다. 홍지민은 <백조의 호수> 2인무, 선화예고를 나온 박윤수는 <아다지에토>, 한예종 출신 김민정은 <차이콥스키 파드되>를 선보일 예정이다.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통해 그동안 소개된 해외 한국 무용수는 80명을 훌쩍 넘는다.
이와 함께 이 무대에선 해외 진출이 유력한 젊은 춤꾼들도 소개해왔다. 그들 중에는 김기민, 서희, 박세은, 강효정처럼 이제는 해외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성장한 이가 많다. 올해 뽑힌 젊은 무용수는 전준혁(영국 로열발레학교)과 송현정(캐나다 국립발레학교) 등 해외파와 안세현·정은지(서울예고), 박선미(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세계 메이저 발레단과 안무가한테 배운 이들이 돌아와 그들의 실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무용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을 보세요. 그렇지 않나요?”라고 했다.
올해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예술감독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김용걸 한예종 교수가 맡았다. 김용걸댄스씨어터는 신작인 군무 작품을 세계 초연한다. 국내 안무가들의 우수 작품을 레퍼토리화하도록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우수 작품 초청 시리즈에는 홍정민의 안무 작품인 <길 위에서 길을 묻다>가 선정됐다. 오는 29일과 3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3668-0007.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사무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