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검열 파문의 도화선이 됐던 젊은 연출가 윤혜숙(왼쪽부터), 김정, 송정안이 14일부터 ‘검열각하’ 무대에 작품을 올린다. 세 연출가가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제 막 ‘입봉’하는 젊은 연출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정부기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 후 9개월, 세 연출은 훌쩍 성장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연극을 보고 대화했다. 검열에 대한 저항도 저항이지만 ‘연극을 하는 태도’가 진지해졌다. 연극을 왜 하지, 어떻게 하지라는 화두를 곱씹었다. 치열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막연했던 연극의 열정과 패기는 이제 삶의 체험과 공감의 영역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팝업시어터 파문’으로 지난해 공연계 ‘정치 검열’ 사태 확산에 도화선이 됐던 세 연출이 돌아왔다. 김정, 윤혜숙, 송정안 연출은 14일부터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 공연에서 나란히 연출을 맡았다.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에서 이들을 만났다.
지난해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공연예술센터는 기획공연 ‘팝업시어터’ 도중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김정 연출의 <이 아이> 공연을 방해했다. 이후 윤혜숙, 송정안 연출은 대본 제출을 요구받자 팝업시어터를 보이콧했다. 이 사태는 ‘정치 검열’ 파문에 기름을 부으며 세 연출을 비롯한 젊은 연극인을 거리로 내몰았다.
“한태숙 연출 밑에서 몇 년간 조연출을 했는데요, 좋은 연극 환경을 누리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문제를 관객한테 던지는 것으로, 문제의식을 지닌 연출인 것처럼 행세했죠. 이제 직접 당한 부당함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제 숙제라고 봅니다.”(김정)
“저희 극단(달나라동백꽃) 부새롬, 김은성 작가는 현대사에 관심이 많지만, 저는 형식적 실험에 주목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고요. 이번 작품에선 제가 깊숙이 들여다본 사건으로 관객과 만납니다. 소재가 아니라 깊이 경험하고 공감하는 연출이 되려 합니다.”(윤혜숙)
“제가 경험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희곡을 대할 때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피켓을 들 때 현장 연극인들을 보면서 공감능력은 저런 것인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생각했어요. 그런 점을 연극 속에서 더 녹여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송정안)
셋 중 송정안 연출이 가장 먼저 14~17일 <2016 불신의 힘>(프로젝트 그룹 쌍시옷)을 올린다. 지난해 팝업시어터에서 선보이려 했던 작품에 검열과 관련된 일련의 상황을 녹여낸 작품이다. 송 연출은 “극중 인물로 송 연출이 등장하는데 좀 지질한 캐릭터예요. 지난 아홉달 동안 번민과 고뇌를 담았는데, 검열각하 공연을 제안받고 그 과정을 옮겼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윤혜숙 연출은 21~24일 팝업시어터 사태로 잃어버린 시간이자 검열반대 피켓시위 시간의 의미를 다룬 <15분>을 준비했다. 윤 연출은 이번 공연의 한줄 성명을 통해 “기록할 자유, 기억할 의무를 통제하려 하는 모든 감시와 검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 아이> 공연을 저지당했던 김정 연출은 28~31일 자유를 잃어버린 광장을 그린 <광장의 왕>(프로젝트 내친김에)으로 검열각하 무대를 이어간다. 김 연출은 “소위 패배자들을 통해 낮고 힘없는 자들이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를 그린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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