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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망각의 상징, 아버지의 시계…망상의 상징, 어머니의 붉은 원피스

등록 2016-07-18 21:25수정 2016-07-19 11:02

한 작가의 두 연극

연극 ‘아버지’에서 시계는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을 상징
‘어머니’에서 붉은 원피스는
젊은날의 행복 되찾겠다는 욕망
연극 <아버지>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상징하는 시계를 치매 환자 앙드레(박근형)가 들여다보고 있다.
연극 <아버지>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상징하는 시계를 치매 환자 앙드레(박근형)가 들여다보고 있다.
<어머니>의 안느(윤소정)가 입은 붉은 원피스는 자식들이 떠난 후 우울증을 겪는 그가 젊은 날을 그리는 욕망의 상징이다.
<어머니>의 안느(윤소정)가 입은 붉은 원피스는 자식들이 떠난 후 우울증을 겪는 그가 젊은 날을 그리는 욕망의 상징이다.

한 무대에 두 연극이 번갈아 오르고 있다. 프랑스의 30대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가 쓴 <아버지>와 <어머니>다. 국립극단이 올린 두 연극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아버지>에서 앙드레는 치매에 걸렸고, <어머니>에서 안느는 ‘빈 둥지 증후군’를 앓고 있다. 아버지는 ‘인생의 아카이브’인 기억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어머니는 ‘품 안의 자식’이 떠난 뒤 행복했던 기억에 집착한다.

아버지의 시간은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넘나들고, 어머니의 시간은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배회한다. 이들 의식의 수면 위엔 두 개의 부표가 떠 있다. ‘아버지의 시계’와 ‘어머니의 붉은 원피스’다. 전자가 시간의 질서를 잃어버린 ‘망각’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젊은 시절에 집착하는 ‘망상’의 상징이다. 두 아들을 둔 50대 남기자와 60대 어머니를 둔 30대 여기자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리뷰한다.

전반적으로 두 연극의 미덕은 신파조의 연민을 걷어내고, 관객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치매나 우울증 환자의 내면을 체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박근형과 윤소정은 그 미덕의 훌륭한 전달자였다. 500석 극장은 좀 넓어 보였다. 액션의 동선보다 심리적 동선을 따라가는 작품인 만큼 소극장이 관객과 정서적 결합에 적합했을 것 같다. 8월14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기억과 망각 넘나드는 ‘치매 체험’

리뷰 | 연극 ‘아버지’

80대 엔지니어 출신 치매 환자

기억을 잃으며 소멸하는 과정

마침내 아이처럼 “엄마 보고파”

기억을 잃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요양병원 간호사(우정원)한테 안겨 울부짖는 80대 치매 환자 앙드레(박근형).
기억을 잃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요양병원 간호사(우정원)한테 안겨 울부짖는 80대 치매 환자 앙드레(박근형).
“방금 나간 사람이 누구예요? 당신은 누구시더라? 나는 누구죠? 내가 앙드레라고요? 예쁜 이름이네요. 우리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80대 앙드레(박근형)의 시간과 기억은 뒤죽박죽이다. 그는 전직 탭댄서로 딸 안느(김정은), 사위 앙트완느와 함께 살고 있다. 아니다. 실제 앙드레는 엔지니어였고 딸은 애인 피에르(최광일)와 런던에 살고 있다. 지금 앙드레는 요양병원에서 간호사(우정원)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다.

연극 <아버지>(연출 박정희)는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얘기다. 연극은 다소 혼란스럽다. 정상인이 아니라 치매 환자의 시간과 기억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기승전결로 정렬돼 있지 않으며, 선후가 바뀌고 사실관계도 왜곡된다. 이 연극이 기존 치매를 다룬 작품과 구별되는 지점도 여기서 시작된다. 연극은 관객이 앙드레의 왜곡된 의식세계로 들어가 그의 입장에 동화하도록 한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연극에 몰입할 수 있고, 그러고 나서야 치매환자의 의식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혹시 내 시계 못 봤어?” “간병인이 시계를 훔쳐갔어!” 앙드레는 시계를 곧잘 잃어버린다. 시계는 정상적인 의식과 기억체계를 의미한다. 엔지니어였던 그에게 시계는 시·분 단위로 쪼개진 노동시간이라는 자본주의의 규율이자 가장으로서 정상적인 생활규칙의 준수를 의미했다. 시계는 젊은 날의 노동과 사랑 그리고 육아에 대한 기억이다. 한편으로 시계는 망각의 시간을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시계는 앙드레의 일상과 기억이 붕괴했음을 상징한다.

연극을 시작할 때 폭 11.5m 무대에는 4인용 식탁과 4개의 의자, 1인용 안락의자와 실내등을 놓은 협탁, 3인용 소파 등이 놓여 있었다. 극이 진행되면서 기구와 소품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앙드레의 머릿속에서 희로애락의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듯, 무대에서는 가구가 하나씩 사라져 마지막에는 의자 하나만 남았다. 미리 체험해보는 한 개인의 정신적 소멸이다.

손준현 기자

외로움이 만든 광기…무엇이 현실일까

리뷰 | 연극 ‘어머니’

장성한 자식이 집을 떠난 뒤

상실감에 우울증 앓는 ‘안느’

남편 외도마저 의심…의식 붕괴

현실과 환상 구분 안 되는 이야기

현기증처럼 빙빙 돌며 전개 특징

연극 <어머니>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떠난 뒤 우울증을 앓는 중년의 ‘안느’ 역을 맡은 배우 윤소정.
연극 <어머니>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떠난 뒤 우울증을 앓는 중년의 ‘안느’ 역을 맡은 배우 윤소정.
“자식은 부모에게 관심이 없지만 부모는 마냥 자식을 쳐다본다.”(윤소정) 이 본능적인 불공평함 때문에 부모는 늘 자식에게 ‘약자’인 걸까.

연극 <어머니>(연출 이병훈)의 주인공 ‘안느’(윤소정)는 자식이 셋이다.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 20대가 된 자식들은 모두 집을 떠났다. 하나 남은 자식인 남편(이호재)은? 세미나에 회의에…. 그건 핑계일 뿐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남편을 죽이는 꿈은 안느가 가장 좋아하는 꿈 중의 하나다. 새로 산 빨간 원피스는 남편 장례식에 입으면 딱 좋겠단다. 그는 지금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메시지를 남겨도 1주일이나 돼야 연락이 오는’ 아들 니콜라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안느의 하루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거지 같았어, 아무 일도 없었어”.

연극은 ‘결혼 25년차 전업주부’ 안느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 허무함을 1인칭 시점으로 보여준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모를 정도로 어지럽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점점 붕괴되어 가는 안느의 머릿속 그 자체다. “이번엔 착각하지 않았어. 우리 아들이 정말 왔다고”라고 말하지만 관객들은 끝내 모른다. 정말 아들이 왔었던 건지, 아들의 애인 엘로디를 질투해 그녀가 주고 간 편지를 찢어버린 것은 진짜였는지 말이다.

현실과 환상 어디쯤에서 안느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아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제 우리 행복해지러 가자.” 안느의 바람은 때마침 등장한 엘로디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연극은 자비 없이 안느를 더욱 몰아붙인다. 병원 침대에 쓰러져 있는 그를 향해 간호사는 “당신은 외롭게 혼자 늙어갈 거예요.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 없을 거예요”라며 서글픈 현실을 깨달으라 재촉한다.

요컨대,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위로나 교훈을 바라는 관객이라면 이 연극은 올바른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경력 54년’ 배우 윤소정의 열연으로 탄생한 안느는 광기 서린,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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