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강요셉-메피스토 사무엘윤
지난해 이어 ‘파우스트의 겁벌’서 재회
강 “형님, 악마의 야비한 웃음 기대해요”
윤 “요셉이는 1막만 지나면 배역과 동화”
지난해 이어 ‘파우스트의 겁벌’서 재회
강 “형님, 악마의 야비한 웃음 기대해요”
윤 “요셉이는 1막만 지나면 배역과 동화”
무대는 독일이었지만, 주역 가수 두 명은 한국인이었다. 지난해 5월 파우스트 역의 테너 강요셉(38)과 메피스토펠레스 역의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윤(45)이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에 함께 섰다.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 그때의 두 주역이 이번엔 서울로 무대를 옮겨 콘체르탄테(콘서트 형식) 오페라로 한국 관객을 찾는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원작으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늙은 박사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다음달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앞두고, 지난 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안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검은 상의, 검은 수염에 눈매가 맵찬 사무엘윤은 겉보기와 달리 부드러운 말투였고, 청회색 재킷 차림에 선한 눈을 가진 강요셉은 때론 진지하고 때론 장난스러웠다. 일곱 살의 나이 차이에도 둘은 친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 하나 끌어주는 사람 없는 유럽무대에서 15~20년씩 ‘끈기있게 버티면서’ 마침내 정상급에 오른 두 사람이다.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농담이 인간적 친밀도를 짐작케 했다. 둘의 얘기를 대화체로 옮겨봤다.
사무엘윤: 구노의 <파우스트>가 대중적이고 화려하다면 베를리오즈 것은 원작에 충실하지. 그래서 정해진 틀 속에서 정확하게 캐릭터를 묘사해야 하는 거야.
강요셉: 구노 것보다 테너가 더 드라마틱하고 난이도도 높잖아요. 메피스토펠레스는 쏙 빠질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고. 작년 베를린 공연 마지막에 형님이 손에서 불을 내며 악마의 웃음소리로 웃으니까 사람들이 ‘어쩌면 저리 야비하지’라고들 한 게 기억나요.
윤: 흠, 야비한 웃음이라고? 사실 그런 웃음은 처음 들어본다는 얘길 나도 많이 들었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역 때도 내 웃음이 소름끼쳤다고들 하더라. 메피스토텔레스는 악마성이 잘 표현돼야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니까. 나는 20년, 요셉이도 15년 이상 활동하다 보니 1막만 지나면 어느새 그 인물이 돼 있고.
강: 베를린 공연 때 두 달 함께 연습하고 또 같은 무대에 5번이나 함께 올랐으니까, 우린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 사이죠.
중후하고 믿음직한 목소리의 사무엘윤은 쾰른오페라극장 종신단원으로 이미 최고의 메피스토펠레스 가수로 이름이 났다. 2004년 세계 최대 오페라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한 뒤, 2012년 한국인 최초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으로 출연한 그는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불린다. 청아하고 매력적인 고음을 자랑하는 강요셉에겐 요즘 전세계 오페라극장으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진다. 지난달엔 ‘2016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상’ 남자주역상을 수상했다. 그가 맡은 로시니의 <윌리엄 텔> 중 아르놀트는 3옥타브를 넘는 최고음 ‘하이C’가 20번 이상 나오는 고난도 배역이다. 정상급 성악가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평가할까?
윤: 저나 요셉이나 쾰른에서 작은 배역부터 시작한 게 같습니다. 요셉이는 콩쿠르에 연연하거나 욕심을 내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밀고 간 게 성공비결입니다. 한가지 걱정은 출연 섭외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는 거. 테너다 보니 자기 몸과 목을 아껴 가면서 더 길게 가수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강: 단역부터 출발한 형님이나 제가 운이 좋았다고들 하지만, 운이 왔을 때 잡아채는 게 준비된 실력 아닌가요? 형님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한국 유학생 몇 백명에게 무료로 마스터클래스 해줬으니까. (단점을 꼽아보라고 하자) 먼저 생김새가 더러워요. 수염, 머리, 눈 등이 오페라가수로 적합한 외모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눈을 보면 그 역할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결론은 칭찬이다.)
윤: 더럽다니, 내가 밥을 좀 덜 샀나? 으하하하.
강: (옆 테이블 아이를 사무엘윤이 달래려는데 아이가 울었다) 거봐요, 형님 얼굴만 보면 아이들도 놀라잖아요. 하하하.
사무엘윤은 당장 다음달 미국 시카고 리릭오페라극장에서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바그너 작품의 저음 배역도 꾸준히 섭외가 들어온다. 강요셉은 내년 8월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 당당히 주역으로 선다. 아직 시즌작품 발표 전이라 오페라 이름은 밝힐 수 없단다. <파우스트의 겁벌>은 에밀 타바코프가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서울시합창단이 함께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세계 무대에서 호평 받고 있는 성악가 사뮤엘윤(왼쪽)과 강요셉이 지난 26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다음달 19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파우스트의 겁벌>에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 역으로 나란히 출연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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