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1일 개막한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여주인공 ‘러빗 부인’ 역을 맡은 전미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무대 위에서 한시도 쉴 수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스릴러극이다 보니. 또 손드하임 음악 특징이 배우가 멜로디에 기대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어요. 박자를 안 놓치려고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하는데 2막에선 바닥에 있는 시체까지 끌어내잖아요. 안 무겁냐고요? 엄청 무거워요. 이제껏 했던 공연에 비해 두 배는 더 집중해야 해요.”
지난 6월21일 개막한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여주인공 ‘러빗 부인’ 역을 맡은 전미도(34)는 요즘 쉬는 날에 더 긴장이 된단다. 이틀만 쉬어도 작품이 낯설어진단다. 10년차 배우에게도 ‘브로드웨이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무게가 벅찼던 걸까? “습득하기는 어려웠지만 한번 익히고 나면 이렇게 재밌는 노래도 없어요. 드라마의 연장선에서 ‘말하듯’ 음표가 쪼개져 있거든요. 러빗의 정서가 변하는 순간 박자가 딱 변하기도 하고요.”
‘미도 러빗’은 러빗 부인을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데 절박한 여자’라고 말했다. 다 망해가던 파이 가게를 홀로 지키던 그에게 한때 흠모했던 ‘토드’가 나타났다. 어쩌다 보니 ‘재료’(인육으로 파이를 만든다)가 생겼고, 얼마간의 돈도 챙겼다. “러빗은 그 돈으로 바닷가에서 토드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어해요. 욕심을 좇아가다 보니 이기심이 광기로까지 이어졌던 거죠. 그들뿐이겠어요? 전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역 ‘토드’를 맡은 조승우, 양준모는 둘 다 전미도와 친한 사이다. <스위니 토드>는 조승우-옥주현의 첫 만남으로 화제가 됐지만 전미도는 벌써 네번째 조승우와 호흡을 맞춘다. 양준모 역시 뮤지컬 <영웅>(2010)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으면 무대에서 좋은 ‘케미’(화학반응을 뜻하는 영어 단어 케미스트리의 줄임말)로 드러나요. 저와 첫 공연을 마친 조승우씨가 ‘팬들이 너랑 나랑 최불암-김혜자래’라며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양토드’가 기대고 싶은 매력이 있다면 ‘조토드’는 티격태격하는 맛이 있어요.”
전미도는 2006년 첫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에서 장면마다 나와 무대 ‘병풍’이 되는 단역을 맡았었다. “공연 막달이 되면 다음 작품을 할 수는 있을까 두렵고 대학로 자취방 월세 걱정하던 시절이었죠.” 연극 <신의 아그네스>(2008)에서 아그네스를 맡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 “윤석화 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지만, 호랑이굴에 들어간 기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인물에 대한 이해력, 집중력을 가장 많이 키웠고 아직도 그때의 배움에 많이 기대고 있단다. 뮤지컬 배우 중에서 눈에 띄게 연극판을 활발히 오가는 그는 올해도 <스위니 토드>에 앞서 연극 <흑흑흑 희희희> 무대에 섰다.
꼼꼼하냐고 물으니 “책임감은 있다”고, 악바리냐고 물으니 “성실하긴 하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작품마다 고비가 찾아온단다. “연습에 들어가면 눈앞에 황무지가 펼쳐지는 것 같아요. 좌절부터 하고 시작하는 거죠. 나 배우 해야 되는 것 맞나? 이런 질문을 10년쯤 하다 보니 이젠 알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이뤄질 거라는걸.”
맡고 싶은 역을 묻자, ‘공주병과’로 꼽히는 <위키드>의 글린다라고 했다. “한 지인이 제가 절대 못할 것 같은 역할로 꼽더라고요. 저는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역이 어울린다고.”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역을 해보고 싶다”던 전미도는 그해 말 꿈을 이뤘다. 그는 “이번에도 말이 씨가 될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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