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소리그룹 ‘앵비’의 멤머들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현대판 노동요 공연 <이상사회 ver.2>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각이다 또 늦었다/ 어럴럴럴 상사디/(…) 너 이 자식 어딜 만져/ 어럴럴럴 상사디.”
여성 노동자의 지하철 출근길 풍경은 ‘지옥철’이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또 다른 ‘지옥’인 감정노동을 겪어야 한다. “나는 스마일 머신/ 고객을 모시는 나는 ‘을’/ 하늘 같은 고객은 ‘갑’이로구나.”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집도 ‘스위트 홈’은 아니다. “여기도 먼지 저기도 먼지”를 쓸고 담고 “밥 먹으면 설거지해야”하는 건 물론 “더러운 옷은 세탁기로, 실크옷은 손빨래 해야” 한다.
경기소리그룹 ‘앵비’가 11~13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이는 현대판 노동요 공연 <이상사회 ver.2>의 연습 장면이다. 지옥철로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달래는 교사, 고객을 ‘갑’으로 모시는 서비스 직원 등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소리극이다.
이미리, 김미림, 최주연, 성슬기로 이뤄진 앵비는 2014년 <굿들은 무당>을 시작으로 노동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올렸던 <이상사회>에 연극적 요소를 강화했다. 앵비가 직접 민요를 수집해 각각의 캐릭터에 맞도록 가사를 붙이고(공동창작), 기매리 연출이 새로 참여해 각색과 극적 흐름 조율에 나섰다. ‘이상사회’라는 제목은 이상하기만 한 한국사회에서 그려보는 이상적인 사회라는 의미다.
연습실 마룻바닥으로 빨래가 휙휙 날아갔다. 김미림이 빨래를 하다 말고 객석의 중년 여성을 무대 위로 모셔, 손을 꼭 잡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경기민요 ‘청춘가’를 개사한 곡이다. 실제 공연 때 김미림을 뺀 이미리, 최주연, 성슬기는 이 대목에서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요를 관객과 공유하는 과정이며, 한편으론 여성 노동자의 일상과 어머니의 희생적 노동이 다르지 않다는 상징이다. 소리꾼들의 실제 어머니 이름도 노래에 등장한다. “선영아 정희야 명순아 말란아/ 노세 놀아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리라.”
연습이 막바지로 치달았다. 소리꾼이자 배우의 호흡이 가빠졌다. 장구와 북소리와 함께 태평소가 치달렸다. 네 소리꾼은 어깨를 곁고 스크럼을 짜거나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객석을 향해 “너와 내가 우리 되어 힘을 주자 힘을 주자, 어여차 어여차”를 외쳤다. 기매리 연출은 “작년 공연에선 팝음악도 집어넣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번엔 다 뺐다. 대신 고단하고 지친 여성 노동자와 관객을 응원하는 장면을 넣었다. ‘언니’들이 함께 놀면서 힘찬 에너지를 보여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꾀꼬리 날다’라는 뜻의 앵비는 2012년 창단했다. 경기민요가 어떤 형식으로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온 이들은 서울남산국악당 상주단체로 있다. 앵비는 오는 12월 취업난으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일명 ‘삼포세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 <노량진 이야기>(가제)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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