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덜은 나라의 동력, 나라의 힘이여!” 그 시절 그들은 분명히 믿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막장일’이야말로 나라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고.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가 ‘씨제이크리에이티브마인즈’ 공간지원사업을 통해 11일 첫선을 보인 연극 <후산부, 동구씨>(연출 황이선)는 4명의 광부에 대한 이야기다. 1967년 ‘구봉광산’, 1982년 ‘태백탄광’ 붕괴 사고 등 실화를 바탕으로 1988년 가상의 충청남도 ‘희락탄광’ 붕괴 현장을 그린다. 지하 200m에서 사고 20일까지도 살아있던 이들이 허무하게 생매장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막장과 땅 위를 오가며 보여준다.
후산부는 탄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미숙련공을 말한다. 후산부가 보조하는 숙련공이 선산부다. 극중 유일한 총각인 김동구가 후산부이고, 춘삼 아재, 만복 성님, 규봉 성님은 동구가 돕는 선산부다. 왜 제목에 후산부 김동구를 넣었을까. 이상범 작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 서툴고 미숙한 후산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걸 극복하고 나아가는 의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후산부 김동구는 4명 중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갱도가 무너지자 불안해하는 동구를 규봉 성님은 “넌 정부가 그리 허술해 보이냐. 예전에 한번 무너졌을 때도 우리 구하러 2천명이 왔었어야. 걱정 붙들어매”라며 안심시킨다. 가까스로 연결된 무전을 통해 탄광 소장도 거든다. “괜히 스스로 나오려고 하지 마. 가만히 대기혀.”
정부는 무심했고, 구조반은 어설펐다. 1988년 여름,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모든 것을 덮고 지나갔다. 무심하게 흐른 20일 동안 ‘말의 성찬’만 이어졌다. 누가 이 사고를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지리한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막장의 광부들은 살아있었지만 누군가에겐 이미 죽은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극 막바지에 이르러 동구는 선산부 성님들을 향해 원망을 쏟아낸다. “살려달라 생지랄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바보천치처럼 굴기만 하고. 다 성님 탓이여!”
연출적 재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매일 반복되는 탄광의 채굴 작업을 징, 꽹과리 등의 리듬에 맞춰 마임처럼 표현한 것이나, 연주자가 중간중간 티브이 앵커로 변신하는 장면 등이 웃음을 자아낸다. ‘각하’의 전화를 받는 소장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동구를 제외한 광부 역의 배우 3명이 1인2역으로 구조반까지 연기하는데 황이선 연출은 “인물들의 선악을 단순히 나누기보다 그 안에 혼재된 딜레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데뷔작인 이상범 작가는 “함부로 세월호 참사를 만지고 싶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부분은 있다. 극중에 등장하는 ‘기다리라’는 대사가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에 의해 구조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의식이 최근 개봉한 영화 <터널>과 겹쳐 보인다.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 가상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현실 속 어떤 재난에 대입시켜도 어색하지 않다.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씨제이아지트.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사진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