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1급 타악 연주자 전경호에게 ‘소리’는 ‘빛’이다. 그가 강렬한 리듬과 풍부한 화성을 지닌 타악기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마음의 건반을 짚었다. 머릿속 악보가 한 음 한 음, 반짝! 눈을 떴다. 그다음, 몸으로 익힌 건반을 쳤다. 하루 6~8시간 무수한 반복연습 끝에 몸과 마음과 악기는 하나가 됐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3m를 오가며, 5옥타브 61개의 장미목 건반을 스틱(맬릿)으로 두드렸다. 금속 울림판을 타고 퍼지는 딩동댕동 딩동댕댕, 어둠 속에서 영혼을 두드리는 맑은 울림. 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 전경호(28)의 마림바 연주다. 마림바는 실로폰처럼 생겼지만 훨씬 크고, 강렬한 리듬과 풍부한 화성을 지닌 타악기다. 그의 손끝에서 ‘소리’는 ‘빛’이 됐다.
조기출산아에게 가끔 나타나는 미숙아망막증 때문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시각장애 1급의 타악 연주자 전경호가 오는 20일 서울 삼성동 베어홀에서 첫 독주회를 연다. 2007년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 어린이음악회와 2009년 대전시립교향악단 자선음악회에서 협연했고,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내년 초 졸업할 예정이다. 지난 13일 밤 연습을 마친 전경호로부터 ‘소리’와 ‘빛’에 대해 들었다.
마림바를 연주하는 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전경호. 사진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연주곡을 먼저 선택하고 들어봅니다. 여기까지는 비장애인과 같죠. 오선보 대신 점자 악보로 점역하고, 손으로 읽어 외운 뒤, 비장애인처럼 악보를 보며 연습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 악보를 짚으며 연습합니다. 일반인보다 두세 배는 힘겹고, 라흐마니노프처럼 화려한 곡인 경우엔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또 높은 음역 건반은 작고 얇은 데 반해, 낮은 음역은 크고 두터워요. 일정하지 않은 건반 사이를 오가며 악기를 체득할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영혼을 울리는 맑은 소리” 때문이고, “주위의 격려” 때문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곡이 엄청나게 빠른 고난도였는데,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도 꿈 반, 오기 반으로 밀어붙인 게 그런 까닭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건반을 짚고, 몸으로 익힌 음표를 두드리는 전경호. 사진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그는 한빛맹학교 중학 3학년 때 타악에 매료됐다. 오케스트라 타악 연주자를 꿈꿨지만 받아줄 곳은 없었다. 포기를 생각할 때 극적으로 빛이 보였다. 한빛맹학교에서 음악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자 2년제 음악전공과를 신설하면서 음악전공 교사들을 모셔왔다.
이철수 당시 타악 교사한테 정식으로 타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배운 마림바 곡은 바이올린으로도 어렵다는 사라사테 작곡의 ‘치고이너바이젠’이었다. “피치카토(손으로 현을 뜯는 연주)나 빠른 음표를 마림바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마림바를 연주해야만 한예종에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일 어려운 곡을 선택했습니다.”
이번 독주회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무대다. 현대부터 고전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꾸몄다. 1부에선 3대의 팀파니로 구성된 알렉산드르 체레프닌의 ‘팀파니를 위한 소나티나’, 네이 호자우루의 ‘마림바 협주곡’ 등을, 이어 2부에선 쇼팽의 ‘즉흥환상곡’, ‘치고이너바이젠’ 등을 들려준다. 독주회 이름은 ‘드리밍 퍼커션’으로 타악 연주자로서 어둠 속에서 키웠던 자신만의 꿈을 관객과 공유한다는 의미다. “타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면서 느낀 것들을 그동안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들려드리는 자리입니다. 떨리지만 용기를 내서 즐기려고 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건반을 짚고, 몸으로 익힌 음표를 두드리는 전경호. 사진 도미넌트 에이전시 제공
그의 꿈은 계속된다. 협연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타악 연주자로 무대에 오르고 싶다. “협연 때는 지휘자와만 잘 맞추면 되지만, 단원으로 서면 다른 악기와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의 경우 1000개 마디 정도 될 텐데, 몇십 마디를 쉰 뒤, 오케스트라와 맞추기는 힘듭니다.” 전경호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를 알아볼 생각이다. 여러 악기와 함께 연주할 때 연주 타이밍을 맞춰주는 장치다.
“오케스트라에서 저에게 가슴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소리에서 빛을 본 전경호는 지금 또다른 ‘빛’을 쫓는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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