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현립미술관에 대표작으로 설치된 일본 미디어작가 오마키 신지의 대형 설치작품 `영원과 순간'. 450제곱미터의 넓은 공간에 깔린 카펫 위에 일본 전통안료로 숱한 꽃과 새 등의 무늬를 그려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밟도록 해서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담으려 한 작품이다.
나고야 시내 메이지야 빌딩에서 선보이고 있는 하타 사토시의 설치작품. 뜨거운 조명등에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수증기가 되는 순환의 과정을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보여주고 있다.
숨은그림찾기 같았다. 묵은 기왓장들 속에 유물처럼 웅크린 현대 도자기들, 상가아파트 안에서 층을 가로지르며 눈앞에 날아오는 새들, 백화점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산처럼 육박해오는 종이사진의 잔해들…. 그렇게 미술은 도심 건물과 거리, 뒷골목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삶터와 엉킨 현대미술 앞에서 관객들은 찾아서 보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일본 중부 아이치현의 미술·공연 분야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6’은 널널한 이미지 여행이었다. 11일 현내 대도시 나고야와 소도시 오카자키, 도요하시에서 막을 올린 이 예술제는 세 지역의 문화, 역사에 차분하게 스며든 다양한 현대미술품들을 일일이 산책하듯 만나는 흥취가 각별했다. 전시·공연이 지역 특산물, 맛집의 동선과 함께 맞물려 책자로 소개되고 지역민들은 안내자로 적극 참여하면서 외지 관객들을 길라잡이했다.
예술감독인 영상인류학자 미나토 지히로(다마예술대 교수)는 올해 주제를 ‘무지개의 카라반 사라이-창조하는 인간의 여행’으로 정했다. 카라반 사라이는 페르시아말로 사막을 오가던 옛 대상들이 쉬던 중간 숙소를 뜻한다. 미나토는 “예술과 인간의 삶 자체가 미지를 향하는 여행”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무언가 만들며 전진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도시 안에 쉼터처럼 차린 예술공간에서 보여주겠다는 포부였다.
이런 기획자의 생각을 오카자키와 도요하시 시내의 전시들마다 실감할 수 있었다. 오카자키 변두리에 있는 150여년 묵은 고택 이시하라 현관에는 100여종의 토종 향신료 병이 놓인 선반이 놓였다. 문학과 맛의 융합을 화두로 작업해온 세키구치 료코의 작업. 병뚜껑을 열고 미향으로 이름난 이 지역의 맛과 향을 고택의 역사와 함께 음미하라고 권했다. 다다미 깔린 방에는 다지마 히데히코의 발광조형물 `생일'과 타일과 스티커 등의 작가 수집품들이 펼쳐졌다. 정원 옆 창고에는 기와 더미들 사이에 진열공간을 터서 들어온 시바타 마리코의 도예품들이 빛났다. 전쟁과 지진을 견뎌온 고택의 강인한 역사 속에 현대미술이 녹아들어 빚어낸 오묘한 풍경들이었다.
오카자키 도심 시리코 백화점 6층 매장에는 디지털 시대 사진의 미래를 모색한 설치작품들이 등장했다. 디지털 이미지에 밀려난 현상사진들의 잔해를 널어놓은 요코타 다이스케의 작업과 이 도시의 낮밤 풍경, 강변의 물살과 사람들의 기운을 포착한 구니히코 가쓰마타의 영상들이 울림을 던졌다. 1층 안내소에서는 지역 특산 핫초된장가루를 커피처럼 드립한 국물 시음장이 인기였다. 무사의 본고장으로 이름높다는 도요하시는 청계천 상가 같은 수상빌딩 상가에서 전시장들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왔다. 건물 내부와 옥상을 새들이 날아다니는 생태계로 바꿔놓은 브라질 작가 라우라 리마의 `플라이트’(비행)는 단연 압권. 좁은 새장에서 키우던 관상용 새들이 나무 조형물 가득한 주거공간 내부를 훨훨 날아다니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게 했다.
최근 디자인도시로 거듭난 나고야에는 아이치현예술센터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설치, 영상작품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미디어작가 오마키 신지의 대형 설치작품 `영원과 순간'은 450㎡에 깔린 대형 카펫 위에 일본화 안료로 숱한 꽃과 새 등의 무늬를 그려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밟도록 만들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담으려 했다. 번화가 사카에마치의 메이지야 빌딩 2층에는 한국과 일본의 아픈 근대사를 판소리 사설과 충격적인 영상 속에 투사한 송상희 작가와 야마시로 지카코의 작업들이 들어왔다. 뜨거운 조명등에 물방울이 떨어져 수증기가 되는 순환 과정을 신비스럽게 연출한 하타 사토시의 ‘힘’ 작업도 놓치기 어려웠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가 한국에서 성행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가 많다. 니가타현의 에치고쓰마리와 요코하마의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예술제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와 더불어 지역 문화 경제 재생에 초점을 맞춰 국제적인 각광을 받아왔다. 난해하고 장황한 주제로 일관하고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급조하는 관행이 만성화한 국내 비엔날레들에 비해 방향성이 명확하고 무거운 미술 담론이나 덩치를 과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미덕이다. 전시를 돌아본 마산 청과시장 프로젝트의 안성진 대표는 “독특한 주제에 지역성과 인류학, 생태학 등의 인문적 성격을 잘 융합시켜 관객 친화적인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아이치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요하시 시내의 상가건물 내부와 옥상 공간을 새들이 날아다니는 생태공간으로 바꿔놓은 브라질 작가 라우라 리마의 공간 설치작품 `플라이트’(비행). 좁은 새장에서 사육되던 새들이 나무 조형물로 가득한 주거공간 내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한 작품이다.
오카자키시 변두리의 옛집 창고의 기와 더미들 사이 진열장에 놓인 시바타 마리코의 현대 도예품. 일상 공간과 현대미술의 차분한 조화를 모색한 수작들이다.
오카자키시 이시하라 옛 저택 공간에도 차분한 분위기의 설치작품들이 배치됐다. 안방에 설치된 다지마 히데히코의 발광조형물 `생일'. 그 뒤 현관 쪽에 향신료 병을 소재로 한 세키구치 료코의 선반설치작업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