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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소년의 공이 내게로 넘어온다

등록 2016-08-26 11:44수정 2016-08-26 15:13

영국과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경기를 앞두고 방글라데시 치타공 거리에서 한 소년이 사람들 앞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로이터>의 필립 브라운 촬영
영국과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경기를 앞두고 방글라데시 치타공 거리에서 한 소년이 사람들 앞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로이터>의 필립 브라운 촬영
시간을 조각조각 자르고 쪼갤 수 있다면 과연 최소 단위는 얼마나 짧은 순간이 될까? ‘나노초'가 있고, ‘플랑크 시간'이라는 개념도 있다. 불교에서는 ‘찰나’(刹那)라고 한다.

그 찰나의 순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멋진 작업이 바로 ‘사진'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진은 시간을 멈춰버리는 마법과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비껴가는 이 무수한 순간들과 인연들을 제대로 ‘포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이터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마도 평화와 사랑일 테다.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지 못한 곳, 사랑이 부족한 곳의 모습들. 그래서 반드시 평화가 필요하고, 사랑이 채워져야 할 순간들.

하지만 이토록 멋진 전시를 보면서도 어딘가 모를 찜찜함이 계속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내면의 체증 같은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마지막 섹션인 ‘에필로그’(Epilogue)에서 이 사진을 만나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엔 기분 좋은 압도감으로 사진을 바라보다 이내 일종의 두려움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진이 걸린 까만 벽 앞을 한동안 떠날 수가 없었다.

로이터스 클래식, 이모션, 유니크, 트래블 온 어스, 리얼리티,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지는 이전 섹션들에서는 온전히 내가 그들의 순간을 바라보는 절대적 입장이었다면,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너무도 또렷한 눈빛으로 관람객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을 모두 지켜봐온 절대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혹은 공을 나에게 던져주고, 이제 그 공을 어디로 던지겠냐고,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그들의 질문 앞에서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했던 순간들, 또 우리에게 주어졌던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그동안 과연 제대로 포착하고 살아왔는가. 외면하고, 때로는 방관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지나쳐온 것은 아닐까.

전시를 보고 돌아온 지금, 묵직한 공 하나를 손에 쥐게 된 기분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 공은 내 손에,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공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손미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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