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1000명의 연주자들이 지난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의 ‘천인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중앙 무대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객석의 상당 부분을 점령한 연주자들의 숫자는 지휘자를 포함해 총 1000천명. 1125명인 청중 수와 대등했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파이프 오르간의 도입에 이어 850명 합창단원이 부르는 웅장한 성령찬미가 ‘오소서, 창조주의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가 객석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이어 141명 규모의 초대형 오케스트라와 8명의 독창자가 가세했다. 롯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연주된 말러 교향곡 8번 ‘천인교향곡’은 국내 청중이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가공할 위력의 음향을 선보였다.
작곡가 말러 자신이 “대우주가 태동할 때의 엄청난 울림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소리가 아닌 태양과 행성의 소리다”라고 말했듯, 연주가 이어진 80분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칸타타풍의 교향곡인 ‘천인교향곡’은 소리를 둥글게 응집시키는 빈야드(포도밭) 스타일의 공연장과 최적의 결합을 보여줬다. 두 부분으로 나뉘는 교향곡의 1부에서 ‘우리 감정을 비추시고,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부으소서’(Accende lumen sensibus, Infunde amorem cordibus)를 거쳐 ‘아버지께 영광’(Gloria Patri Domino)에 이르기까지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빛나는 총주는 청각적인 황홀경을 선사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장면을 차용한 2부는 종래의 교향곡 형식을 탈피해 마치 오페라처럼 쓰였다. 독창자 8명의 생동감 있는 연주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제2 소프라노와 어린이 합창이 주고받은 성스러운 선율, 뒤이은 합창과 관현악의 장대한 총주는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탄생하기까지 연주상의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코리안 심포니와 19개 합창단을 이끈 지휘자 임헌정(63)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1000명이 합을 맞추는 건 기적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휘자는 정면의 오케스트라 단원뿐 아니라 부채꼴처럼 좌에서 우로 늘어선 합창단원, 독창자, 뒤돌아 앉아 거울로 지휘를 보는 오르간 주자, 아예 지휘자의 시야 바깥인 객석 2층에 자리잡은 금관연주자까지 한데 아우를 수 있어야 했다. 특히 850명 합창단원의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고 일시에 같은 발음과 표현, 세심하게 조정된 음량을 내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난점 때문에 1910년 독일 뮌헨 초연 당시 1030명이 출연해 ‘천인교향곡’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곡은, 이후 초연 당시와 같은 대규모로 연주된 적이 드물었다. 국내에서는 1978년 국립교향악단이 이 곡을 초연한 이래 500명이 최대였고, 세계적으로도 1000명이 넘은 경우가 손꼽을 정도였다.
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1000명의 연주자들이 지난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의 ‘천인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그래서 이번 연주를 앞두고 ‘국내 클래식 음악 연주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연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더군다나 지휘자인 임헌정은 부천 필하모닉 예술감독 재직 중이던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국내 처음 완주하며 말러 열풍을 낳은 장본인이 아닌가.
합창의 규모가 대단하다 보니 때때로 독창이 합창의 큰 음량에 파묻히곤 했고, 관현악 앙상블의 세밀한 아름다움과 리듬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사소하게 여겨질 만큼 이날의 경험은 특별했다. 아마도 임헌정의 말처럼 “연주자에게도 청중에게도 일생에 한 번뿐인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인교향곡은 새로운 클래식 전용홀로서의 잠재력을 과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한 롯데콘서트홀 쪽의 개관 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영리한 선택이었다. 연주는 27일 한 차례 더 이어졌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