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기획공연 ‘서로 낭독회’에 <당신일기>로 참여하는 극단 안녕팩토리의 낭독 공연 연습 모습. 서촌공간서로 제공
올해 대학로의 젊은 연출가들은 지난해 터진 정치검열에 맞서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 릴레이 공연에 집중해왔다. 핵심은 국가권력에 의한 예술억압과 이에 저항하는 표현자유 문제였다. ‘풀뿌리 모금’으로 지난 6월부터 모두 13개 작품과 2번의 격월 포럼을 마련해 검열 이슈와 검열을 대하는 시각을 확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연극계의 이런 흐름의 한편에서, 또 다른 연극의 핵심 주제인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기획공연이 마련됐다.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로 꼽히는 정진새, 이연주 등이 오는 23일부터 3주 동안 서울 인왕산 자락 ‘서촌공간 서로’에서 여는 ‘2016 서로 낭독회’다. 윤성호, 이혜빈, 박정규를 더해 모두 5명의 연출가가 참여해 가족 간, 남녀 간 등 ‘5색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이번 공연의 기획 피디는 정진새 연출이 맡았다. 그는 올해 3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한반도 사드 배치를 다룬 연극 <전국싸움대회>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드라마 <미생>을 패러디한 “우리는 모두 밉생이야!”라는 대사는 한동안 대학로에 회자하기도 했다. 정 연출은 사회적 이슈에 깊은 시선을 두면서도, 1인극 <이야기의 힘>처럼 다양한 형식과 내러티브 실험에도 적극적이었다.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기획공연 ‘서로 낭독회’ 기획 피디를 맡은 정진새 연출.
정 연출은 사랑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의 기획의도에 대해 “최근 젊은 극작가들이 시사적인 이슈와 사회참여적인 연극에만 골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나 주변의 사연 혹은 자신의 성장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을 보다 내밀한 형태의 낭독이라는 형식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연주 연출은 올해 ‘검열각하’ 기획공연의 하나인 <이반검열>과 <삼풍백화점>을 통해 사회와 사회 속의 개인을 다양한 시각으로 포착해 호평을 받았다. 이 연출은 “저는 사회적 의식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랑 이야기도 사람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라고 참가 배경을 밝혔다.
‘서로 낭독회’는 새로 시작하는 풋풋한 사랑,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사랑, 가족의 사랑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모든 세대가 가질 법한 고민을 ‘사랑’에 녹여내 객석의 공감을 끌어낼 예정이다. ‘서로 낭독회’는 서촌공간 서로가 신진 아티스트를 도와 신규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취지로 마련했다.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기획공연 ‘서로 낭독회’에 <당신일기>로 참여하는 극단 안녕팩토리의 낭독 공연 연습 모습.
먼저, 이달 23~25일에는 이시원 작, 이연주 연출의 <데이트>와 정진새 작·연출의 <샌드위치>가 올라간다. <데이트>에선 새해 첫날밤 12시 공사장 앞 벤치에서 만난 남녀의 데이트를 그렸고, <샌드위치>에선 시한부 인생의 엄마를 간호하는 주인공이 엄마가 싸준 맛없는 샌드위치를 매번 버렸던 일을 떠올린다.
30일~10월2일엔 윤성호 작·연출의 <미인>과 이혜빈 작·연출의 <나선은하>가 공연된다. <미인>에선 여자 집 앞에서 3번 이별하는 남녀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나선은하>에는 13살 은하와 아빠, 그리고 새엄마가 등장한다. 10월7~9일 무대에 오르는 박정규 작·연출의 <당신일기>는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해온 20년 된 커플 얘기다. (02)730-2502.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촌공간서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