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2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부부가 작은 관과 십자가를 들고 부쿠레슈티병원으로 가고 있다. 이들의 아기는 전날 에이즈로 숨졌다. 로이터사진전사무국. 라두 시게티 촬영
로이터 사진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들렀다. 기자들의 빼어난 사진들이 많았다. 시각적 아름다움부터, 강한 리얼리티, 다양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었다. 보도사진이 어떻게 다채롭고 함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로, 모처럼 눈과 마음이 즐거운 시간이 됐다. 단연 눈길을 끈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찍은, 숨진 아이를 묻으러 가는 부모 사진이다. 들고 가는 관의 크기가 아이임을 말해준다. 미리 준비된 관과 십자가에서 아이의 죽음이 예견됐으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부모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엄청나고도 크나큰 슬픔 앞에서도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자식의 죽음 앞에 슬퍼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어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은 슬프지 않은 게 아니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슬퍼할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슬픔, 그 아픔을 압도하는 무력감은 사진을 바라만 보는 나에게도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한때는 사진기자를 꿈꾸었다. 비록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사진은 여전히 내 삶 가까이에 있다. 지난해 여름휴가에는 나흘 내내 서울 성벽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 사회는 더할 나위 없이 밝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루마니아에서 전시회에 날아든 한 장의 사진처럼 말이다.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게 사진이라서 인간지사 희로애락 중 기쁨과 즐거움만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씩 내가 카메라를 쉽사리 들지 못하는 것도 고통스런 현장을 취미로 찍는다는 점에 마음 편치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소망해본다. 뷰파인더로 보이는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고, 우리의 기쁘고 즐거운 순간들이 좀더 많은 사진을 통해 소개되면 좋겠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