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역사 팩션’ 뮤지컬 잇따라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배경 삼아
김옥균·고종·명성황후·이상 등 무대에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배경 삼아
김옥균·고종·명성황후·이상 등 무대에
관객석을 향해 역사가 손짓한다. 망국의 기운이 퍼지던 19세기 말, 외세의 침입은 노골화되고 안으로는 농민혁명 등이 체제를 뒤흔들고 있었다. 자발적 근대화 시도, 대한제국 선포, 일제 강점 등 숨가쁘게 진행된 역사의 흐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드라마다. 그래서일까. 올가을 격동의 근대사를 무대로 불러들인 ‘역사 팩션’ 뮤지컬들이 잇따른다.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과 그를 암살한 홍종우를 그린 <곤 투모로우>와 또 하나의 명성황후 이야기 <잃어버린 얼굴 1895>, 1930년대 경성을 주름잡던 문인들의 열정과 사랑을 담은 <팬레터>가 그 주인공들이다. 창작자들이 이 시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장성희 작가는 “구한말은 대한민국 현주소의 첫 단추다. 선조들의 못난 선택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아쉬움과 갈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홍종우가 상해에서 김옥균을 살해하고 청나라에서 그 시체를 경강(한강)으로 보내왔으므로 검험(검시)한 사정을 부에 보고하도록 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1년(1894년) 3월9일 병술 1번째 기사
■ 갑신정변 그후 10년…‘곤 투모로우’ <곤 투모로우>는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의 ‘도라지’를 원작으로 한다. 이지나 연출은 그가 2013년 초연을 올린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조연이었던 김옥균을 이번 작품 전면에 내세웠다. 김옥균은 초기 문명개화론자로 1884년 갑신정변 당시 공화제를 대안으로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작품은 ‘삼일천하’가 끝난 뒤 일본으로 도피한 김옥균과 고종의 부름을 받고 그에게 접근한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에 주목한다. 이 연출은 이 작품을 “역사 누아르”로 정의하기도 했는데 혼란스러운 시대, 총명했던 두 인물이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을지 궁금해진다. 실제로 김옥균은 자신에게 닥칠 비극은 생각지 못하고 프랑스를 다녀온 ‘인텔리’ 홍종우에게만큼은 경계심을 풀었다고 한다. 13일~10월23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묘시(오전 5~7시)에 왕후가 곤녕합(경복궁 건청궁 내 위치)에서 붕서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2년(1895년) 8월20일 무자 1번째 기사
■ 또 하나의 명성황후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이 올해 3번째로 올리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하나의 물음표에서 시작한다. 이미 구한말 사진기가 퍼져 고종 등 왕실 가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사진도 있는데 왜 명성황후의 사진은 없는 걸까? 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은 진위를 알 수 없고, 잃어버린 얼굴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작품은 1895년 ‘을미사변’의 밤으로 돌아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려 한다. 또 고귀한 황후와 희대의 악녀라는 극단적 평가 사이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투쟁했던 여성으로서의 명성황후에 주목한다. 장성희 작가는 “명성황후는 시대적 한계를 안고 살았던 여자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역사에 대한 해원의 굿으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0월11~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씨제이(CJ)토월극장.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상의 소설 <날개>(1936년) 중에서
■ 구인회 모티브 ‘팬레터’ <팬레터>(연출 김태형)는 소설가 이상과 김유정, 1930년대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심리 드라마다. ‘히카루’라는 죽은 여류작가의 소설 출간 소식을 시작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업가 세훈과 히카루의 애인 김해진의 편지, 소설을 출간시키려는 이윤 등이 얽히면서 그들 사이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등장인물들은 이상 등 실존 인물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극중 에피소드에도 이상과 김유정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이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이름은 모두 달리했단다. 한재은 작가는 “이상과 김유정은 성향이 다름에도 친해진다. 구인회 역시 이상이 김유정에게 가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들의 우정이 흥미로웠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일제 강점기 경성은 암울했지만 근대 문물들이 섞여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며 시대적 매력도 빼놓지 않았다. 10월 8일~11월5일까지.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각 공연사 제공
뮤지컬 ‘곤 투모로우’ 김옥균 역을 맡은 배우 이동하(왼쪽)와 홍종우 역의 김무열.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은 김선영.
뮤지컬 ‘팬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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