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둥 신시가지의 히말라야센터 앞에 설치된 일본 건축가 소 후지모토의 신작인 상하이프로젝트 파빌리온. 높이 21m의 임시조형물로 모든 이들에게 열린 투명한 경계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항저우에서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만난 지난 4일, 항저우 북쪽의 대도시 상하이에는 또다른 ‘정상들’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세계 주요 비엔날레(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제)의 기획자와 주요미술관 관장들, 서구와 중국·한국의 컬렉터, 작가, 건축가 등 수백여명이 상하이의 중추인 푸둥에 모여든 것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상하이 푸둥 남쪽 신시가지. 이 거리의 문화상업시설 히말라야센터 앞에 설치된 ‘정글짐’ 모양의 파빌리온(임시구조물)이 최종 집결지였다. 이 구조물은 3년 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서펀타인 갤러리에 환상적인 파빌리온 ‘구름’을 선보였던 일본의 40대 건축가 소 후지모토(후지모토 소스케)가 내놓은 야심작. 집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색다른 이 건축공간에서 이날 저녁 이미지의 향연이 시작됐다. ‘인류의 향후 100년 미래 2116’을 주제로 기술과 문화, 문명의 융복합을 추구하는 인문예술축제 ‘상하이프로젝트 2016’이 서구와 아시아 각지에서 온 미술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막을 알렸다. 구조물 계단을 휘감고 내려오며 강렬한 몸짓들을 선보인 무용가들 춤판이 개막식 무대를 수놓았고, 파빌리온 안쪽 구석 유리방에는 브라질 작가 찰도미렐레즈의 설치작업 ‘쿠카카카’가 눈길을 붙잡았다. 가짜꽃, 진짜 인분통 무더기들이 놓인 단과 거꾸로 진짜꽃, 가짜 인분통 무더기들이 놓인 단을 서로 대치하듯 배열해 진실과 가식의 경계 사이를 암시한 이 설치대작은 집과 주변 환경의 사이를 넘나드는 파빌리온의 속성과 멋드러지게 어울렸다. 더욱이 파빌리온과 마주본 센터건물은 60년대 이래 일본 특유의 메타볼리즘(공간의 유기적 진화를 추구하는 건축)을 추구했던 건축거장 아라타 이소자키의 육중한 콘크리트 정면을 갖고있어 후지모토의 구조물과 재미있는 대비감도 느껴진다.
후지모토 파빌리온은 흔히 ‘아시바’로 부르는 네모진 격자형 구조들이 수없이 연속된 얼개로 만들어졌다. 1만9700여개의 파이프를 9000여개의 조인트로 이어붙여 21m 높이로 설치한 세계 최대급의 임시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기존 건물의 폐쇄공간 개념을 벗어나 건축물 보조부재인 ‘스캐펄딩’을 중심구조로 쓰면서 사방이 트이도록 된 공간이다. 사람들의 교류와 예술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열린 얼개로 꾸려진 셈이다. “건축의 미래에 대한 궁극적 비전을 탐색하기 위해 설계했다”고 후지모토는 건축노트에 적었다.
그에게 파빌리온 설계를 맡기면서 이번 프로젝트의 텃밭을 꾸린 기획자는 두 사람. 광주비엔날레재단을 이끌었던 중견기획자 이용우(히말라야미술관 관장)씨와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런던 서펀타인 갤러리 관장)다. 히말라야센터를 운영하는 젠다이그룹의 지원 아래 이들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처럼 2, 3년마다 열리는 회기를 따지지 않는 시각축제 모델의 혁신을 구상했다. 이번에 먼저 선보이는 1차 프로젝트 ‘페이스(Phase 1)’은 프로젝트를 지속할 상하이의 문화예술과학기술 콘텐츠를 연구(리서치)하고 다양한 전문가, 대중과 교감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참가한 작가, 전문가들은 연구팀을 꾸려 다양한 의제를 모으고 이를 토론 혹은 전시, 퍼포먼스 등으로 앞으로 1년간 꾸준히 보여주게 된다. 첫 프로젝트에서 빚어낸 콘텐츠를 기반으로 2차 프로젝트가 내년에 시작되고, 다시 그 성과들을 연쇄적으로 이어 받으면서 앞으로 100년간 꾸준히 프로젝트의 내용을 쌓고 진화시키는 게 목표다. 개막식에서 만난 두 기획자는 “규모와 작가 중심의 기존 비엔날레가 명확한 한계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대중과 전문가의 취향, 생각, 역량들을 함께 녹여낼 새 틀이 절실했고, 그런 고민이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됐다”고 털어놨다. 프로젝트의 중국 명칭이 씨앗을 뜻하는 ‘쭝쯔’(종자)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개막에 앞서 이날 낮 파빌리온에서는 건축, 기술생태, 이 프로젝트의 리서치 활동 등을 소재로 3차례 라운드테이블과 토론 퍼포먼스가 열렸다. 특히 후지모토와 이용우 기획자, 다이즈캉 젠다이그룹 회장 등이 나온 첫 라운드에 시선이 쏠렸다. ‘건축, 건물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토지를 점유하지 않는 건축, 착용이 가능한 건축, 놀이공간이 되는 건축 등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됐다. 오후엔 나이지리아 예술가 오토봉 은캉가가 기획한 토론 퍼포먼스 ‘랜드버세이션’(땅에 대한 대화를 뜻하는 합성어)이 파빌리온 안으로 들어왔다. 상하이의 생태 지형 환경, 주민들의 관심사 등을 제재로 세 개의 원형탁자를 놓고 연구원들이 관객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이 눈길을 모았다. 개막 며칠 전엔 유팅 등 현지 건축가들이 골목의 버려진 작은 집을 문화공간으로 개조해 대중과 공유하는 ‘겸손한 문화공간 만들기’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행사를 살펴본 승효상 건축가는 “파빌리온의 열린 구조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며 융합적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며 “서울건축비엔날레 같은 국내 건축, 미술계 행사들에도 유용한 참고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하이/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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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프로젝트 개막식에 앞서 열린 1부 라운드테이블 행사 모습. 파빌리온 설계자 후지모토(왼쪽 둘째)가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이가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용우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이고 왼쪽에 있는 이는 프로젝트를 후원한 다이즈캉 젠다이그룹 회장.
4일 저녁 파빌리온 앞에서 펼쳐진 춤꾼들의 공연 모습. 열린 건축을 지향하는 파빌리온의 공간 속에 무용의 몸짓이 녹아들어가는 색다른 장면들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