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5일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북한 학생들이 석고상을 놓고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의 다미르 사골 촬영
다미르 사골은 2016년 5월 5일, 36년 만에 열린 북한의 노동당 대회 취재를 간 외신기자다. 그러나 정작 당 대회 취재는 불허되고 대신 평양 소년 궁전을 방문했다.
방과 후 수업을 참관하고 기록한 그의 여러 사진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미술수업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흰색 상의와 붉은 색 스카프를 목에 동여 맨 어린 소년, 소녀들이 석고 데생에 집중하고 있는 뒷모습이다. 전경에는 여러 석고상들이 조명 아래 늘어서 있고 하단에는 이젤에 화판과 종이, 4비(B)연필로 석고를 그리는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을 보니 어린아이들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데생솜씨가 탁월하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재현술을 익히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석고상이다. 흔히 미술학원에 비치되어 있는 석고상은 알다시피 그리스, 로마조각들에 기원을 둔 것들이다. 서구 사실주의, 환영주의를 익히는 데 있어 불가피한 것들이자 서구인을 모델로 한 인체미와 해부학 등을 공부하는데 불가피한 소재로 삼은 것이다.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는 서구에서 들어온 그 석고상을 데생하면서 서구미술의 재현술을 익혔고 서구인의 미적 기준에 길들여졌다. 지금도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들은 아그리파, 비너스, 아리아스 상들을 수년에 걸쳐 암기하듯이 그려야 한다. 그런데 정작 북한에서는 서구인의 모습, 그리스조각의 모방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제작한 인체조각을 토대로 석고데생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것 역시 그들이 주창하는 주체미술의 한 사례일 것이다. 하여간 나로서는 저 어린학생들이 기본적인 데생력을 익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오로지 저러한 사실주의(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주체미술)만이 강제되면서 창조력과 상상력이 억압되는 형편이 아쉽기도 하다. 하긴 이곳 입시미술 역시 매 한가지이긴 하다. 분단으로 인해 너무도 확연히 갈라진 남북한 교육 현황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중한 한 장의 사진을 이번 로이터 사진전시에서 너무도 뜻밖에 조우했던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