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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한국 찾은 고려극장

등록 2016-09-08 15:19수정 2016-09-08 20:39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단
1937년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행

도시 떠돌며 고단한 고려인 삶 담아
카자흐스탄국립 고려극장으로 우뚝

7일 대학로서 연극 ‘여배우’ 공연
우리말 지키는 극단 자존심 뚜렷
1932년 고려극장 창단 초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연한 작품.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한국인들의 영웅성을 드러낸 <장평동의 횃불> 등이 있다. 고려극장 누리집
1932년 고려극장 창단 초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연한 작품.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한국인들의 영웅성을 드러낸 <장평동의 횃불> 등이 있다. 고려극장 누리집
“내일도 나는 까작(카자흐스탄) 무대에 설 거에요.” 여배우 역의 백안또니나가 유창한 우리말로 대사를 쳤다. 억센 함경도 억양과 서울말이 묘하게 섞였다. 한국인의 얼굴이지만, 조금 낯설게도 보였다. 젊은 남자 배우 유가이 보리스는 서툰 우리말로 여배우에게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지난 7일 저녁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극장의 연극 <여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무대 밖에선 늘 고독한 ‘인민배우’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고려극장은 옛 소련 지역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유일한 고려인 극장이다. 알마티에 자리 잡은 극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문화의 발원지다. 극장이 없었다면 고려인들이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을 터이다.

1932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단한 고려극장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옮겨지는 운명을 맞는다.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립 고려극장, 탈틔쿠르간주 고려인음악극장을 거쳐 1968년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 고려인 음악코미디극장으로 격상돼, 현재 국립극장의 지위를 지녔다.

고려극장의 한국초청공연 <여배우>의 연출자인 고려인 3세대 김엘레나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과 고려극장의 어제와 오늘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한국연극협회 제공
고려극장의 한국초청공연 <여배우>의 연출자인 고려인 3세대 김엘레나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과 고려극장의 어제와 오늘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한국연극협회 제공
“할아버지는 서울 태생이셨고, 할머니는 북한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1937년 할아버지가 원동(극동)에서 열차에 태워져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할 때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남한 출신이라서 (옛 소련 공산주의 시절에) ‘자본주의 나라 출신’이라 늘 잡혀갈까 두려워서 고향 얘기를 별로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부모님도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게 아쉽습니다.”

강제이주 고려인 3세로 <여배우>의 연출자인 김엘레나(39)의 말이다. 비교적 우리말에 익숙한 그에게서, 간간이 통역의 도움을 받아 디아스포라의 신산한 세월을 견뎌온 고려극장 이야기를 들었다.

“고려극장을 창립한 1세대 연성용, 이길수, 이함덕에 이어 2세대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연극대학을 나온 김블라지미르 인민배우, 문알렉산드르 배우 등이 있었어요. 2세대들은 극장 건물도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다녀야 했어요. 당시 고려인들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 개간사업에 투입될 때는 수많은 사회주의 노력영웅들을 배출하기도 했지요. 그런 고난 속에서도 80여 년을 지켜온 국립 고려극장은 여러 다른 민족에게 자랑거리입니다.”

고려극장에는 현재 고려인 3·4세대를 중심으로 90명의 단원이 있다. 연극단, 성악단, 무용단, 사물놀이팀 등이다. 극장은 84년 동안 300편의 연극을 올려, 연인원 500만명이 본 것으로 추산한다. 극장은 국가훈장을 수여받고 5명의 인민배우, 17명의 공훈배우, 10명의 공훈예술인을 배출했다. 레퍼토리에는 고대연극과 한국 연극은 물론, 카자흐스탄, 러시아, 외국 극작가들의 희곡들이 있다. 모든 연극은 한국어로 공연하고 러시아어로 동시통역한다.

1941년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고려극장의 단원들. 고려극장 누리집
1941년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고려극장의 단원들. 고려극장 누리집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단원들이 많아 연극을 올릴 때 어려움도 크다. “고려인 1·2세대는 ‘했으구마’나 ‘안녕하심둥’ 같은 함경도 사투리를 썼고, 북한 춤과 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3·4세대는 우리말교육원에서 자습을 하거나 알마티 국립예술아카데미에서 한글을 배우지만 우리말이 서툴러요. 카자흐스탄 독립 뒤에는 남쪽 식(한국식) 말을 더 많이 하게 됐습니다.”

내년이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고려극장 창립 85주년이다. 극동에서 탄생해 멀고 낯선 중앙아시아를 떠돌다 알마티에 정착하기까지, 이주와 이산의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은 이제 고려극장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우리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10년 전에 모스크바에서 한국전설을 각색한 연극 <아리랑>을 공연했고, 2007년 강제이주 70주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에서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어릴 적 원동을 떠나온 임로자, 문알렉산드르 같은 배우는 눈시울을 적셨지요. 참으로 벅차고 자랑스러운 고려극장입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한국연극협회 제공·고려극장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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