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축제인 ‘시댄스2016’의 개막공연작으로 24·25일 전막으로 무대에 오르는 프렐조카주 안무의 <수태고지>.
계모인 왕비가 백설의 머리와 허리를 툭 꺾고 배를 냅다 걷어찼다. 반라의 백설을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왕자는 잠든 백설을 뒤에서 껴안고 일으켜 ‘꼭두각시 조종하듯’ 춤추게 했다. 형벌을 받은 왕비는 불에 달군 쇠구두를 신고 “앗 뜨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잠든 백설이 깨어날 때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흘렀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안무였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거장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가 2014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백설공주>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다.
프렐조카주는 1970년대 프랑스에서 탄생한 ‘누벨 당스’(Nouvelle Danse, 새로운 무용)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누벨 당스는 안무가를 ‘작가’로 보고 무용수보다 안무가의 작품세계를 중시한다. 영상·연극기법 등 표현의 다양성이 특징이다. 프렐주카주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고전으로 불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스노우 화이트> <정원> 등 올리는 작품마다 관객을 열광시켰다.
프렐조카주 발레단이 13년 만에 시댄스(SIDance,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를 찾아왔다. ‘시댄스2016’ 개막공연으로, 24일과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갈라 프렐조카주>를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에서 뽑은 2인무와 군무, 그리고 <성 수태고지> 전막 공연이다. 팬들에게는 그의 작품세계를 핵심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프렐조카주도 자신의 작품을 다양하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갈라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내 다양한 작품들의 패치워크(여러 천 조각을 꿰매 만드는 공예)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2인무는 내 작품들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2인무 작품들을 통해 한국 관객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먼저 2부에 전막으로 공연하는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 계시를 받은 마리아를 모티브로 삼았다. 신의 메시지를 받고 ‘가장 기쁘지만, 가장 두려운’ 상태, 은총과 공포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마리아의 모습을 새로운 예술의 탄생의 벅참과 두근거림으로 연결한 작품이다.
1부에선 여러 작품의 2인무 등을 선보인다. 1692년 미국 세일럼의 마녀재판에서 영감을 얻은 <스펙트럴 에비던스>, 비발디와 현대 전자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라 스트라바간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계층 장벽이 뚜렷한 현대사회로 옮겨온 <로미오와 줄리엣>, 남녀 사랑을 우아한 에로티시즘으로 그려낸 <정원>, 관능적이고 잔혹한 동화로 재탄생시킨 <백설공주> 등 다섯 작품의 2인무가 공연된다. 1인무로 선보이는 <밤>(천일야화)은 관능미와 신비로운 우아함이 돋보인다.
‘살아있는 누벨 당스의 전설’ 카롤린 칼송이 오는 28일 자신이 안무한 <블랙 오버 레드>(로스코와 나의 대화)를 직접 무대에서 공연한다.
시댄스2016에서 프렐조카주와 함께 ‘프랑스 포커스’를 빛내는 인물은 카롤린 칼송이다. ‘누벨 당스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카롤린 칼송의 작품은 3편의 솔로로 구성된 <단편들>이다. 2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들 가운데 <블랙 오버 레드>(로스코와 나의 대화)는 색면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서 받은 강렬한 영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73살의 카롤린 칼송은 이 작품에 직접 춤꾼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밖에 스페인 5개 지역 현대무용을 묶은 ‘스페인 특집’과 유럽과 한국을 잇는 우리 안무가 조영순, 이은영의 무대도 마련됐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시댄스2016은 10월15일 토요일까지 22일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과 소극장, 신도림 디큐브시티 안 디큐브광장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는 프랑스, 스페인, 한국, 포르투갈, 스위스, 네덜란드, 볼리비아, 마다가스카르, 페루 등 17개국, 42개 단체, 39개 작품이 참여한다. (02)3216-1185.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시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