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의 내밀한 풍경을 담은 김미경 작가의 ‘포리스트’ 연작 중 일부. 도판 아트스페이스 제이 제공
의자에 앉으니 눈앞으로 제주섬의 새벽 숲이 다가온다. 찌르레기와 뻐꾸기의 나직한 울음이 들리고, 어둑어둑했던 나무숲의 속살이 희미한 빛살에 서서히 드러나는 선경이다. 울퉁불퉁한 화산암 토양에 나무와 덩굴, 바닥을 기는 양치식물들이 얼기설기 얽힌 섬 특유의 숲 곶자왈은 맑고 깊은 색감으로 물들어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사진전시장 아트스페이스 제이(J)의 안쪽에 내걸린 김미경 작가의 ‘더 포리스트(숲)’ 연작들은 곶자왈 한가운데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감흥을 일으킨다. 짙은 바닷빛 벽에 내걸린 곶자왈의 무성한 나무숲과 꽃풀 등은 등걸의 표면이나 잎의 몽글몽글한 윤곽들이 만져질 듯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비 그친 새벽 향긋하고 비릿한 숲 내음이 풍기는 순간에 앵글에 붙잡힌 이미지들이다. 촬영 때 숲에서 울린 새소리 등의 음향을 녹취해 별도의 영상과 함께 들려주고 있어 생동감은 더욱 커진다.
곶자왈 숲의 정경을 포착한 김미경 작가의 ‘포리스트’ 연작 중 일부. 도판 아트스페이스 제이 제공
섬이 고향이고, 어머니가 해녀였다는 작가에게 곶자왈과 바다를 비롯한 제주의 자연은 이중적 의미를 띤 존재로 보인다. 가장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피사체이면서도, ‘포리스트’ 연작의 세부처럼 보면 볼수록 낯설고 두려운 영기를 머금은 타자이기도 하다. 어두운 여백처럼 드러난 숲 속 심연의 이미지들이 두렵고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피워올리는 건 이런 맥락일 것이다. 어릴 적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하거나 한라산 계곡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공포의 기억이 작업에서 접한 친근한 자연 감성과 뒤얽히며 작가만의 양가적인 감수성으로 나타난 듯하다. 박영택 평론가는 “숲이 뿜는 영기와 놀라운 매혹,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비가시적 존재의 자취를 힘껏 낚아채고자 하는 사진”이라고 평했다. 구작이지만, 폭풍우 치기 전후 남해 곳곳의 바다와 하늘이 접한 모습을 파스텔톤의 색면으로 포착한 들머리의 ‘남해바다’ 연작들도 눈길을 붙잡는다. 10월6일까지. (031)712-7528.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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